5.18의 숨겨진 영웅 안병하 치안감
42년 전인 1980년 5월 18일 광주.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을 총칼로 유린했습니다.
이때 '시민을 향해 발포하라'는 신군부의 명령에 저항한 경찰 간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안병하 치안감이었습니다.
본인도 위험해지는 것을 알고도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5·18 영웅 중 한 명인 안병하 치안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안병하 치안감은 1928년 7월 13일 생으로 양양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1949년 육군사관학교 임관(8기)하여 제6사단 예하7 연대 포병대에서 포병 연락장교로 임무를 수행 중에 있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전면 남침이 시작됨에 따라 사단이 방어하는 춘천과 가평 일대도 북한군 2사단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당시 안병하 중위는 위험한 정찰 임무를 수행하여 적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 춘천지구 옥산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 공로로 1951년 5월 7일 화랑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1962년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안병하는 같은 해 경찰 총경 특채로 경찰이 되어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부산 중부경찰서장, 서울 서대문경찰서장을 역임하고 1968년에는 남파 간첩선을 타고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를 소탕한 공로로 중앙 정보부장 표창과 녹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1979년 2월 그는 전라남도 경찰국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때 광주에서 대규모 시위가 연이어 일어났고, 안병하 국장은 민심을 수습하며 시위에 대응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안병하 치안감은 이때 부하들에게 "시위 진압 안전 수칙을 잘 지켜라" , "도망가는 학생들을 뒤쫓지 말라" , "시민 안전에 유의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시민군을 진압하라”며 발포 명령을 내리자 안 국장은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 고 거부했습니다.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한 것인데요.
거기에 더해 우발적인 사고를 우려해 경찰의 총기를 회수했으며, 시위대에 음식과 옷을 나눠주고 부상자를 돌봤습니다.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하기 직전 현장의 경찰 인력을 일시 해산시켜 시위대와 경찰 간의 유혈 충돌을 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안 국장의 노력은 신군부의 미움을 샀고 보안사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고 직무 유기 혐의로 직위 해제당했습니다.
8일 만에 풀려난 안병하 치안감은 오랜 기간 고문 후유증으로 고혈압과 신부전증에 시달리다 1988년 10월 10일 생을 마감했습니다.
5·18의 숨은 영웅이었던 안병하 치안감은 2017년 11월 16일 인권 경찰로서 공적을 인정받아 치안감으로 추서, 진급되었습니다. 안병하 치안감은 진정한 대한민국의 경찰이자 진정한 공직자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을 했습니다. 그 희생자를 막기 위해 본인을 희생한 안병하 치안감이라는 숨겨진 영웅도 다들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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