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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뉴부대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 6.25 한국전쟁 253전 253승 불패의 부대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며, 내일은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72주년 되는 날입니다. 6.25 한국전쟁에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들 있으신지요? 한국전쟁 당시 자유 수호를 위해 머나먼 에티오피아에서 참전을 한 최정예 부대로 253 253승 불패의 부대로 유명한 강뉴부대에 대해 이번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여러분들은 에티오피아라는 나라를 알고 계시나요? 아프리카, 커피, 못사는 나라 등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그러면 6.25 한국전 당시 에티오피아가 전혀 상관도 없는 우리나라에 오직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참전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는 분들은 많지가 않습니다.

 

 

 

셀라시에 황제

 

에티오피아의 6.25 참전을 주도한 사람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였습니다. 그는 냉엄한 국제 사회의 현실에서 평화라는 말이 얼마나 허울뿐인지 몸소 체험한 인물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935년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에 의해 침공당했고, 이에 셀라시에 황제는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에티오피아는27만 명이 숨지고 나라가 빼앗기고 황제는 스위스로 망명을 갔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계속 투쟁을 했고년 이탈리아를 몰아내고 나라를 되찾습니다.

 

이런 일을 겪은 셀라시에 황제는 자신들이 당한 설움을 갚아주는 방법은 우리가 받은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유엔 연설에서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억울하게 침략당하면, 우리 모두가 도와주자!” 라며 집단 안보를 주장했습니다.

 

셀라시에 황제는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전 참전을 결정합니다.

 

 

에티오피아 최정예 부대라 할 수 있는 황제 직속의 제1근위 사단에서 자원자들을 모아 1개 대대를 편성합니다. 황실 근위대에서도 가장 뛰어난 병사들이 선발되어 철저한 훈련을 거친 후 1951 4 12일 아디스 아바바 메스켈 광장에 집결하여 황제로부터 직접 부대 기를 하사 받습니다.황제는 이 자리에서 강뉴부대라는 칭호를 내리는데요.

 

여기서 강뉴(Kagnew)는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 또는 적을 초전에 격파하다 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강뉴부대 활약상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원들은 1 4500킬로미터를 달려 1951 5 7일 부산에 도착하여 미 제7사단 휘하에 편입됩니다. 그리고 1956년에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5차례에 걸쳐 6,037명을 파견하였습니다. 이중 전사자 121명 부상자 536명이라는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위 피해상황을 보면 전사자와 부상자는 있지만, 적에게 잡힌 포로의 숫자는 없습니다.

 

 

강뉴부대원들은 아무리 불리한 상황에서도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포로가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했으며, 그래서 실제로도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습니다.

 

2개월간 미군 교관들의 집중적인 훈련을 받고 본격적으로 실전에 배치된 그들은 부대의 이름에 걸맞게 뛰어난 활약을 합니다.

 

강뉴부대원들은 총 253번의 전투에서 253승을 거두며 전승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강뉴부대의 주요 격전지는 강원도 화천과 철원, 경기도 연천 지역이었습니다.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격렬한 전투지에 강뉴부대가 투입됐고 이들은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목숨 걸고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라는 셀라시에 황제가 한 말처럼 그들은 전투에 임했습니다. 아프리카와 기후가 너무 다른 한국에서 혹독한 추위와 함께 전쟁을 치러야만 했던 그들. 253 253승의 전적 뒤에 얼마나 많이 그들이 고생을 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이들은 253회의 전투를 치렀고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전설적인 부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강뉴부대는 강하기만 한 부대가 아니었습니다.

 

전쟁으로 피폐한 대한민국을 따뜻하게 감싸준 그들이었습니다.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년 강뉴 부대는 경기도 동두천에 보화원을 설립하여 고아들을 보살폈습니다. 일부 부대원은 월급을 모두 에티오피아로 보내지 않고 조금 떼어 전쟁고아들의 생활비에 보탰고, 잠 잘 때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의 곁을 지켜주기도 했습니다.

 

 

강뉴부대원들의 시련

하지만 이런 용감하고 가슴 따뜻한 강뉴부대원들이 6.25가 휴전으로 중단된 뒤 에티오피아로 돌아가 큰 시련을 겪게 되는데요.참전 이후7여 년 동안 혹독한 가뭄으로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농축산업이 피폐해지면서 아프리카 최대 강국 에티오피아가 한순간 몰락해버립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가 채 되지 않았을 때,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가 넘었던 에티오피아 경제가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이런 혼란을 틈타 1974년 맹기스투가 쿠네타를 일으켰고, 에티오피아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고 맙니다. 이후 셀라시에 황제는 사망하고, 강뉴부대원들은 공산주의 국가와 싸웠다는 이유로 재산압류 및 감옥살이, 고문등을 받게 됩니다.

 

이런 핍박 속에서 6.25 한국전쟁 참전 사실을 숨긴 채 이름까지 바꾸며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사회주의 정권이 몰락했지만 그때 입었던 참전용사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강뉴부대 참전용사였던 한 노병은 한국의 한 방송에서혹시 한국에 전쟁이 나면 지금도 가서 도와주고 싶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잘 사는 대한민국을 보면 대단한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런 강뉴부대 참전 용사들 중 아직도 많은 분들이 생존해 계십니다.

 

 

이분들은 힘들게 겪었던 경험을 후회가 아닌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으며 고국으로 돌아가 예상치 못하게 받았던 핍박에도 억울해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으며,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현재 에티오피아는 다수의 국민이 기근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받았던 따뜻한 마음을 돌려줘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때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영웅들,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들의 정의로운 용기와 대한민국을 위한 노력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참전용사 여러분.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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