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독립을 반대했던 유일한 나라
1943년 11월 22일~26일 카이로에서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화민국의 장제스 세 연합국 수뇌가 모여 열린 카이로 회담(Cairo Conference).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에 대한 연합국의 대응과 아시아의 전후 처리 문제에 관해 협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최초로 결의한 카이로 선언이 1943년 11월 27일 발표되었습니다. 하지만 회담 과정 중 한국의 독립을 반대했던 유일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영국이었습니다.
이 당시 영국의 총리는 윈스턴 처칠. 그는 영국의 정치가로 제61대·63대 총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영국 총리이며 엘리자베스 2세 시대의 첫 영국 총리입니다. 영국인들에게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지만, 그는 제국주의 시절에 젊은 시절을 보낸 영국인 답게 철저한 인종주의자였으며, 백인이 다른 인종들보다 우월하는 백인 우월주의자 였습니다. 영국과 몇몇 소수 백인들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한다는 것을 매우 혐오했으며, 그들이 지배했던 인도인을 야만인이고, 미개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는것은 당연하다 생각하고, 말하고 다닌 그였습니다.
식민지 케냐에서 독립 운동을 한다고 15만명을 잡아 수용소에 가두며 그가 한 말이 있습니다. "미개한 야만인들에게는 독가스를 쓰는 것은 찬성이다" 라며 입장 표명을 했습니다. 또한 백인에 비해 눈이 위로 올라간 듯한 동양인들의 눈을 그는 뱁새눈 이라며 비하했습니다. 그가 경멸했던 2차 대전의 전범 히틀러와 같이 우생학을 매우 신봉하며,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장애인들은 아예 격리조치 시켜 씨를 말리자는 정책안가지 의회에 제안했습니다.
이런 생각과 행동들을 한 처칠이지만, 본인 스스로는 죽을때 까지 자신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카이로회담에서 처칠은 유일하게 한국의 독립을 반대했습니다. 한국의 독립을 찬성했다가는 영국 자신들의 식민지도 독립할 명분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는데요.
카이로회담에 참석한 중국의 장제스는 처음부터 처질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티베트 문제는 물론이고 일본이 점령한 만주에 대해서도 처칠은 중국의 권익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본의 식민지 처리에서도 처칠은 약소민족의 고충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장제스는 느꼈다고 합니다.
장제스는 처칠을 전형적인 식민지주의자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의 일기에서 처칠을 ‘따분한 조크를 쉴 새 없이 지껄이고 입이 가벼우며 오만하고 이기적인, 약소민족에게는 고압적인 식민지주의자’(11월 24일)로 평가하고 기록했습니다.
다음날 일기에도 ‘놈(처칠)은 전형적인 영국식 앵글로 색슨 인이다. 사상이나 정신적 기백, 인격에 이르기까지 루스벨트와는 동렬에 놓고 논할 수 없는 인간이다. 속이 좁고(狹隘), 교활(浮猾)하며, 이기적이고(自私), 완고(頑固)하다는 여덟 개의 한자로 딱 떨어지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11월 25일) 라고 기록했습니다.
영국 식민지를 잃게 될까봐 우리나라의 독립을 반대했던 인물 처칠. 기억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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