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조선시대 미남의 조건과 대표 미남들

 

조선시대에도 많은 미남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의 기준은 그때 그때 다른데요. 그러면 그 시대의 미남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조선시대 미남의 조건은 현재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풍채가 좋아야 하는 것과 뽀얀피부와 갸름한 턱선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 미남 첫번째 조건인 풍채가 좋아야한다는 것은 키가 크고 어깨가 넓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한복을 입어었기 때문에 풍채가 빈약하면 왜소해 보였기 때문에 미남의 조건으로 풍채를 중요시 했습니다.

 

조선시대 미남 두번째 조건은 잡티 없이 뽀얀 피부와 갸름한 턱선입니다. 여기서 뽀얀 피부는 계급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선시대에 평민이하 계급은 농사를 지어 얼굴이 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피부가 뽀얗다는 것은 양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갓을 써야했고 갓끈으로 인해 턱선이 부각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갸름한 턱선을 굉장히 선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미남의 조건에 맞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미남들은 누가 있었을까요?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종

문종 이향

조선의 왕 중에서도 미남이 있었으니 바로 문종 이향입니다. 세종대왕의 아들이자 단종의 아버지인 문종.

문종하면 병약한 이미지로 많이들 기억하고 있으실겁니다. 하지만 이는 실제 문종의 이미지와는 반대라고 합니다. 그는 풍채가 당당하고 얼굴이 준수했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실록에 의하면 중국 사신들이 문종을 볼때마다 외모를 극찬했으며, 문종의 외모에 반해 쫓겨난 궁녀가 많았을 정도로 꽃미남이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호탕한 성품에 세종을 뛰어넘는 학문적 천재성까지 겸비한 뇌섹남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예까지도 능했다고 합니다. 문종의 호통에 천하의 수양대군도 찍소리도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꽃미남 문종은 오로지 학문에만 관심을 갖었고 여자 보기를 돌같이 했다고 합니다.

 

 

연산군

 

연산군

폭군의 대명사 하면 가정 먼저 떠오르는 연산군. 하지만 그도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미남이었다고 합니다.

 

연산군은 키카 굉장히 컸으며, 피부는 백옥같이 희었다고 합니다.

'저리 낭창한 허리로 어찌 정사를 펼치겠는가'라는 상소문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 수염까지 적었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보니 현재의 꽃미남의 외모였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영조

 

영조

또 다른 조선시대의 미남왕은 영조 입니다. 영조는 당시 조선시대 남성들이 추구한 미남의 상이라고 합니다.

 

이밖에도 효종과 헌종, 인종이 조선시대 왕들중 대표적인 꽃미남이었다고 합니다.

 

 

왕 뿐 아니라 양반들 중에서도 조선을 대표하는 미남들이 있는데요. 조광조, 류성룡, 정약용이 조선시대의 미남들이었다고 합니다.

 

 

조광조

조광조

어우야담의 기록에 따르면 조광조는 세수를 할때마다 '이것이 사내의 얼굴인가' 하며 탄식했다고 합니다. 당대 사내들의 눈에는 대장부답지 못했을테지만, 여인들은 조광조의 수려한 외모를 보며 앓아누웠다고 합니다.

 

류성룡

 

류성룡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뿐 아니라 왜에게까지도 잘생긴 얼굴이 알려졌다고 할 정도로 최초의 한류 꽃미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잘생겼으면 질투심 많은 선조 조차 "금옥처럼 아름다운 선비" 라 지칭했다고 합니다.

 

 

정약용과 정혜인

정약용

마지막으로 정약용은 피부가 굉장히 희고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기품을 뽐냈다 합니다. 당시 왕이었던 정조 대왕께서 정약용을 보고 아름답다 칭찬까지 했다고 합니다.

 

배우 정혜인씨가 다산 정약용의 6대 직계 후손이라고 하니, 정약용의 외모 또한 출중했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여기까지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미남들이었는데요. 번외로 일제 강점기때 미남 두분을 더 소개해 볼까 합니다.

 

백석

먼저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시인인 백석 시인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지식인의 아픔을 노래하는 시를 썼던 우리나라 문학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분입니다. 말쑥한 옷차림, 큰 키, 흰 피부를 가진 미남이었으며, 당시 여인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합니다. 그리고 보시면 배우 신성록씨와 많이 닮았을 정도로 한 외모 하셨던 분 입니다.

 

윤동주

 

또 한분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기 자신의 성찰을 시로 표현했던 윤동주 시인으로 깨끗한 피부, 잘생긴 외모, 운동신경까지 뛰어났던 미남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미남이 많은 이유는 앞에서 봤던 선조들의 뛰어난 유전자 덕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유관순 열사에게 저지른 일본의 끔찍한 만행 - 이 끔찍한 고문을 17세 소녀에게.

유관순 열사에게 저지른 일본의 끔찍한 만행 유관순 열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릴적 유관순 누나로 배웠던 우리에게는 언제나 누나로 기억이 되는 유관순 열사. 유관순

blogdaitso.com

 

임진왜란 최초의 육지전 승리를 거뒀지만 억울하게 죽은 장군 - 왜 승리한 장수가 처형을 당했을

임진왜란 최초의 육지전 승리를 거뒀지만 처형당한 신각 장군 임진왜란 최초로 왜군에 승리한 전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이 승리로 이끈 옥포대첩 입니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최초 육지전에

blogdaitso.com

 

반응형
교차형 무한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