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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조 이자춘

 

태조 이성계에게 최초의 기반을 준 그의 아버지 환조 이자춘

 

조선왕조를 처음 창업한 태조 이성계. 뛰어난 활 솜씨에 고려를 여러차례 외적으로부터 지켜낸 구국의 영웅이었던 이성계는 자신이 지킨 고려를 전복시키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웁니다.

 

태조 이성계가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기반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환조 이자춘

 

그 최초의 기반을 마련해준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던 이자춘입니다.

 

이자춘은 조선이 개국되고난 뒤 태조와 태종에 의해 추존이 되어 환조가 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고려 말기의 장수이자 조선의 추존왕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휘 및 자는 자춘이며 몽고식 이름은 오로사불화 입니다.

 

 

그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로 조선을 개국한 이후 태조 이성계가 그의 아버지 이자춘을 환왕으로 추존하였다가 이후 손자인 태종 이방원이 환조로 재 추존합니다.

 

이의방

 

이자춘의 5대조이자 태조 이성계의 6대조 조상은 이린 이라는 인물로, 고려 무신정권 1대 집권자인 이의방의 친동생 이었던 인물입니다.

 

정중부

 

이의방이 정중부와 정균 부자에게 제거 당하자 동생 이린은 남은 가솔을 이끌고 고향 전주에 내려와 정착했습니다.

 

 

이후 전주이씨 집안은 전주에서 대대로 살아오다 강원도 삼척으로 이주 후 다시 원나라에 속해있던 함경도 쌍성지역으로 이주합니다.

 

이자춘 역시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함경도 쌍성 지방에서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는 원나라에서 천호라는 벼슬 자리에 있었는데 이는 형인 이자흥이 죽자 어린 조카를 대신하여 임시로 받은 벼슬이었습니다. 이후 조카가 장성하였지만 이자춘은 벼슬 자리를 조카에게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공민왕

 

이자춘이 천호직에 있을때는 원나라는 패망의 길을 걷고 있었고 고려에서는 공민왕이 자주권을 찾고 잃은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개혁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환으로 쌍성총관부를 탈환하려했는데, 4대 쌍성총관 조소생과 사이가 좋지 못했던 이자춘은 1355년 개경으로 가서 몰래 왕을 만나 고려에 투항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이에 고려 조정은 그의 귀순을 받아들였으며, 1356년 유인우에게 군대를 주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도록 했습니다.

 

이때 공민왕은 이자춘에게 미리 사람을 보내 소부윤 관직을 내리고 자신의 어대를 증표로 주면서 내응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공민왕의 요청에 이자춘은 내응했고 유인우의 군대는 결국 쌍성총관부를 무너뜨렸습니다. 이렇게 함경남도 일대는 조휘와 탁청의 반란 이후 99년 만에 고려의 영토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당시 20대의 젊은 이성계도 아버지와 함께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공민왕은 쌍성총관부를 폐지하고 이 지역에 화주목을 설치합니다. 이후 이자춘은 공민왕의 반원정책에 가세해 공을 세워 대중대부사복경이 됩니다. 이때 저택을 하사받아 그의 오랜 지지기반이었던 동북면(함경도 영흥)을 떠나 개경에 머무르게 됩니다.

 

개경에 머문 지 1년 만에 이자춘이 동북면에 돌아가려했습니다.

 

 

고려 조정의 신하들은 이자춘이 동북면으로 돌아가면 토착 기반을 이용해 공민왕을 배반할것이라며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공민왕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가 아니면 동북면을 안정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 로 임명해 다시 동북면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이후 삭방도만호 겸 병마사에 임명되어 동북면을 다스리다가 1361년 이자춘은 지병으로 사망합니다.

 

이자춘이 죽음으로써 동북면을 총괄할 이가 사라지자 공민왕과 고려조정은 이성계에게 이자춘에게 내렸던 관직을 내려 동북면을 총괄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이성계는 동북면의 토착기반을 그대로 이어받게 됩니다.

 

이는 결국 조선왕조 건국의 세력기반이 되어주었습니다.

 

 

이자춘과 그의 세력들은 고려 귀족 및 중신들에게 원의 부원배라 불리며 무시를 당했고, 인정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자춘은 자신의 세력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젊은 혈기의 아들 이성계에게 자중하고 또 자중하며 고려에 충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 또한 자신들을 원의 수하였던 이들이 아닌 그들과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날이 올 것이다 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습니다.

 

 

오직 고려에 충성을 다해 인정을 받고 싶었던 이자춘.

 

그의 아들 이성계는 고려에 충성을 다하며 수많은 외적을 물리치며 고려의 구국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던 이성계 장군.

 

여기까지만 보면 이자춘의 소원은 어느정도 이루어졌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뜻과는 달리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시작으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창업하게 되면서 고려에 충을 다하고자 했던 이자춘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왕이 되었으니 더 좋아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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