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원균 보다 나았던 임진왜란 의병장 원연
임진왜란 칠천량해전으로 조선 수군에게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힌 원균.
그가 조금만 더 올바른 대처를 했더라면 이순신 장군님이 힘들게 키웠던 조선의 정예수군은 괴멸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이후의 여러 전투에서 이순신 장군님이 그렇게 힘든 전투를 이어가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연전연승을 하던 조선 수군에 대패를 안긴 원균.
그런 원균과는 너무나 달랐던 그의 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원연이라는 인물입니다.
어떤부분이 형과는 달랐는지, 원연이라는 인물은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시기 의병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홍의장군 곽재우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의병장 원연이라는 인물은 너무나 생소한데요.
원연은 잘 몰라도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냈던 원균은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원균의 동생이 바로 원연입니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이 있지만, 이 형제들에게는 해당하는 말이 아닌것 같습니다. 오히려 형으로 인해 덜 알려지고 피해를 본 것이 원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연의 본관은 원주이며, 자는 광보, 호는 충절입니다. 병마 절도사를 지낸 원준량의 차남으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의 형이 원균입니다.
그는 태어나서 큰아버지인 원수량의 양자로 들어갔습니다.
1567년인 명종 22년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사마시란 생원과 진사를 선발하는 과거 시험이었는데, 그 시험을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향리에 은거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원연은 청년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용인에 침입한 왜적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때 그가 이긴 일본군의 장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라는 인물입니다. 와키자카는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칠본창이라 불리는 장수중 하나로 전국시대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한 실전경험이 풍부한 장수입니다.
우리에게는 한산도대첩에서 이순신장군님께 패한 장수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실전경험이 풍부한 적을 상대로 원연은 의병들 중에서 기병만 가려 뽑아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왜군을 도발했고. 그의 계략에 속아넘어간 왜군들은 그런 원연의 기병을 쫓아다니기 급급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나머지 병력은 매복을 시켰고, 기병들을 이용해 왜군을 매복지로 끌어들여 대승을 거둔것입니다.
기병을 운용해본적이 없는 원연이었지만, 이러한 전략을 구사해 대승을 거둔점만 봐도 그가 전략가로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원연은 연기현감이 되었다가 적성현감 겸 양주진관 병마절제도위로 전보되었습니다.
적성현감으로 재직할 때 고을에 불이 나 황폐화되자 백성들을 모아 황무지를 개척하는 등 정사를 잘 돌봐 칭송이 자자했고,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원연은 군사적인 식견과 목민관으로서의 자질까지 보인 인물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인물이 잘 알려지지 않은점이 의아하기까지 합니다.
이후 원연은 관찰사와 의견이 맞지 않아 사임하고, 향리에 돌아와 벼슬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그는 다시 의병을 조직해 왜군을 막다가 전사했습니다.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와해시킨 원균이 배를 버리고 도망친것과 비교가 되는 대목으로 적과 맞서 물러서지 않고 순절했던 원연의 모습은 형과 너무나 대조가 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의병을 조직하고, 왜군에 맞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고 오직 나라를 위해 충을 다한 원연.
이후 숙종 5년인 1679년 조정이 전란에서 원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충절정려를 내렸고, 이조참의로 추증하고 적성공의 시호를 내립니다. 여기서 정려는 국가가 개인에게 내리는 훈장이나 표창같은 것으로 원연의 충절을 국각가 인정했다는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또한 순조 29년인 1829년 나라에서 임진창의훈에 들게하였습니다.
원연은 우리에게 형 원균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형과는 달리 인품과 능력을 두루 갖춘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업적 대비 낮은 인지도로 인해 그의 무덤은 지정 문화재가 되지 않아 이정표와 안내문 조차 없는 실정입니다. 형으로 인해 억울할 수도 있는, 원균과는 다른 길을 걸었던 의병장 원연. 나라를 위해 희생한 그를 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식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아. 원을 버리고 이제 고려에 충성을 다하자" -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환조 이자춘을 아시나요? (0) | 2022.07.18 |
---|---|
임진왜란 발발 1년도 지나지 않아 중위에서 중장까지 초고속 승진한 인물. 임진왜란 무쌍신화 황진 장군 (0) | 2022.07.18 |
원주 원씨가 진짜로 존경해야할 인물은 원균이 아니라 원균의 동생이었던 의병장 원연 입니다. 형보다 나은 아우가 있습니다. (0) | 2022.07.17 |
얼굴도 예쁘지 않았는데, 연산군의 여자가 된 여인 - 연산군과 엄마와 아기놀이까지 하다. 연산군의 모든 투정을 받아주었던 장녹수 (0) | 2022.07.16 |
모쿠소라 불리며 임진왜란 일본군을 벌벌떨게 만들었던 장군 - 바다의 충무공만큼이나 큰 공을 세웠던 육지의 충무공 (0) | 2022.07.15 |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