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몽골군을 두 번 물리친 승려 - 김윤후
고려 말 원나라는 세계 최대의 강국이었으며 또한 최고의 정복 국가였습니다. 그들의 몽골군은 세계 최강의 군대였습니다.
이런 세계 최강 몽골군이 1231년 1차 고려 침입을 하였고, 이듬해인 1232년 2차로 고려를 침공하였습니다.
몽골군은 내륙으로 남하하여 개경을 지나 지금의 용인 부근인 처인성에 도착합니다.
몽골군 총사령관은 권황제라 불리는 사르탁이었습니다.
이때 처인성의 백현원 출신의 승려 김윤후가 처인 부곡민과 승병들을 규합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처인성은 아주 작은 성이었습니다. 처인성에 있던 처인 부곡민들은 양민이지만 천민과 다를 바 없는 차별과 천대를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정규군 및 무기 지원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세계 최강 몽골군에 맞서 정규군도 아닌 일반 백성들이 처인성 방어를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김윤후의 지휘 아래 열심히 전투에 임했습니다.
전투 중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몽골군 사령관 사르탁에게 명중했고 덜컥 사망하고 맙니다. 몽골군은 총사령관이 죽으면 전쟁을 멈추고 철수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일로 그들은 즉각 철수를 합니다.
사르탁을 죽인 것이 김윤후라 생각한 당시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는 김윤후를 상장군에 임명했으나 김윤후는 자신은 전투 시 활과 화살을 들고 있지 않았다며 상장군직을 사양했습니다.
그리하여 김윤후는 정3품 상장군 대신 정 6품 섭낭장에 임명이 되었습니다.
또한 열심히 싸운 처인부곡민들을 위해 주현으로 승격시켜 처인현이 됩니다.
사르탁이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기록만 있어 누가 죽였는지 불분명하지만 정규군의 지원 없이 부곡민들을 지휘해 세계 최강 몽골군과 맞서 물리친 김윤후의 공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충주산성 방호별감이 됩니다.
그로부터 21년 뒤인 1253년 몽골군이 5차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도 김윤후는 충주산성 방호별감으로 있었습니다.
예쿠가 이끄는 몽골군은 빠른 속도로 남하해 전략적 요충지인 충주성을 포위하여 공격합니다.
김윤후와 충주 백성들은 70여 일간 온 힘을 다해 맞서싸웁니다.
이때 몽골 지배층 사이의 내분으로 예쿠가 몽골로 돌아갔고 조금만 더 싸우면 몽골군을 물리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김윤후에게 왔습니다.
하지만 식량과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김윤후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만약 힘을 다해 싸워 준다면 귀천을 불문하고 모두 관작을 줄 것이니 너희들은 나를 믿으라" 라고 하며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일치단결해 마침내 몽골군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약속대로 노비에서 해방되고 관직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김윤후는 또 한 번 몽골군을 물리쳤습니다.
세계 최강의 몽골군을 두 번이나 물리친 김윤후는 충주성 전투 승리 후 공을 인정받아 감문위 섭상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수사공 우복야까지 올랐다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대몽 항쟁의 선두에서 백성들을 이끌고 싸온 김윤후.
그의 이런 업적은 후에 조선시대 의병의 뿌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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