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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국민 영웅이자 베트남판 이순신 - 쩐 흥 다오

 

세계 최강의 부대를 이끌고 대 제국을 건설한 몽골. 이런 몽골군과 싸워 승리하여 독립을 지킨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베트남 입니다.

 

베트남과 몽골과의 전쟁 당시 베트남 국민을 결속시키고 뛰어난 전략으로 몽골을 물리친 장수가 있었으니, 그는 베트남판 충무공 이순신인 쩐 흥 다오 입니다.

 

쩐 흥 다오

 

오늘날까지도 베트남에서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쩐흥다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쩐흥다오는 베트남 쩐 왕조의 명장으로 본명은 쩐꾸옥뚜언(진국준) 입니다. 쩐흥다오라는 호칭은 그의 작위인 흥다오브엉(흥도왕)에서 따온 것으로 '쩐흥다오'라는 이름은 한국으로 치면 이순신 장군님을 '이충무공'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는 쩐 왕조의 황제인 태종의 조카로 왕족이었습니다.

 

쩐흥다오는 1257년 원나라가 베트남을 1차로 침입해 왔을 때 북방을 굳게 지키며 공을 세웠습니다.

 

 

1283년 원나라가 50만의 대군을 이끌고 다시 베트남을 공격해왔습니다.

 

1285년 초 쩐 왕조의 수도 탕롱(지금의 하노이)이 함락되자 쩐 왕조의 황제 인종은 원나라에 항복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전쟁으로 더 이상 백성들을 고통받게 하지 않도록 원에 항복하는 것이 어떻겠냐'라고 인종은 쩐흥다오에게 묻습니다. 상대는 세계 최강의 몽골군인데다 수도까지 함락된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니 항복을 고민한 것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쩐흥다오는 항복을 고민하는 인종에게 "항복을 결정하셨다면 우선 신의 목부터 베어주소서"라고 말하며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합니다.

 

이에 마침내 인종도 결사 항전을 결심하게 되었고, 이에 쩐흥다오는 무려 20만에 달하는 장정을 모집합니다.

 

50만의 원나라군에 맞서 싸우기에는 20만 대군도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원나라군은 당시 대부분의 국가를 정복한 강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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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쩐흥다오는 20만 대군으로 전면전을 하기보다는 청야 전술과 게릴라 전술을 통해 원나라 대군에 대항합니다.

 

베트남은 군마가 부족해 고려나 송나라와 같이 보병이 중심이었는데, 기병 중심의 원나라 군과 전면전을 벌이면 불리하였기에 이 전술은 원나라군을 상대할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습니다. 거기다 밀림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는 베트남에 지리를 잘 안다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잘 살린 전법이었습니다.

 

이 전법은 원나라군에게는 생지옥을 선사하였습니다.

 

 

베트남 여행을 가보신 분들은 더 잘 알겠지만 그 덥고 습한 날씨에 각종 독충과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에서 1~2만도 아닌 20만 대군이 게릴라전을 벌인다는 것은...

 

소수의 병력이 게릴라전을 벌여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디에서 적이 나와 공격할지 몰라 신경쇠약이 걸릴 만큼 정신적 고통을 받는데, 20만 대군이 게릴라전을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거기다 타지에서 풍토병과 식량부족까지 겪다 보니 원나라 대군은 베트남 정복을 포기하고 철수합니다.

 

현대에도 프랑스, 중국, 미국 군대도 베트남의 게릴라전과 풍토병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으니, 당시는 어땠을지 짐작이 됩니다.

 

쿠빌라이 칸

 

자신의 정복 전쟁이 제동이 걸린 원 세조 쿠빌라이칸은 1287년 3차 베트남 침공을 감행합니다. 이때 병력은 수륙 양군을 합쳐 30만의 대군이었습니다.

 

이에 쩐흥다오는 격전지로 바익단강(백등강)을 선택합니다. 바익단강은 강폭은 매우 넓지만 도처에 얕은 여울이 있고, 우리나라 서해처럼 조수간만의 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함선을 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바익단강은 이전에도 938년 중국 오대십국 시대의 남한의 침입을 막아낸 곳이며, 981년에는 북송의 침입을 격파한 곳이기도 합니다.

 

쩐흥다오는 바익단강 바닥에 말뚝을 쭉 박아둔 후 만조로 물이 들어차 있을 때 원의 수군을 강 상류로 유인했습니다.

 

백등강 전투

 

그리고 물이 빠져나간 간조 때 박아둔 말뚝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원나라 함선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히며 승리합니다.

 

거기에 더해 도주하는 원나라 육군마저 미리 매복시켜둔 복병으로 대파해버리는 전과를 거둡니다.

 

쩐흥다오와 베트남군의 승리로 쩐 왕조는 원나라로부터 국가의 독립을 지켜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포기를 몰랐던 원나라는 베트남 4차 원종을 준비하지만 도중에 쿠빌라이 칸이 사망하면서 베트남 정벌을 완전히 포기하게 됩니다.

 

 

원나라와의 전쟁이 끝나자 쩐흥다오는 그 공을 인정받아 흥도왕에 봉해졌으며 1300년 사망합니다.

 

쩐흥다오는 생전 병서요략, 만겁종비전서 같은 병법서를 만들 정도로 병법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는데요. 이중 병서요략은 몽골 2차 침입 당시  베트남 지리에 맞는 함정 설치법, 유인책, 게릴라 전법을 정리한 것으로 이 책은 훗날 월남전에서 미군을 상대하는 베트콩의 기본 전략서로 활용되며 현대전에 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쩐흥다오는 오늘날에도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으며 특히 베트남 해군은 바익단강 전투의 쩐흥다오를 베트남 해군의 아버지로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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