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를 대신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류성룡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를 대신해 전란 극복을 위해 앞장섰으며,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산 청백리이자 조선의 5대 명재상 중 한명인 류성룡.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전 이순신 장군님은 종 6품에서 정 3품으로 7품계나 올라가는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전라좌수사가 됩니다. 이렇게 파격인사를 단행할 수 있게 선조에게 이순신 장군을 천거한 인물이 당시 우의정이었던 류성룡입니다.
그는 퇴계 이황의 제자였으며, 정치가이자 당대 최고의 학자로 학문 실력이 뛰어났음은 물론이거니와 스스로 병법서까지 저술할 만큼 문무 양면에 뛰어났던 인물입니다.
일찍이 이순신 장군의 능력을 눈여겨봤던 류성룡이었기에 선조에게 천거를 한 것인데요.
또한 류성룡은 선조와도 인연이 깊었는데, 그는 왕실의 인척으로 관직에 오른 후에는 오랫동안 선조를 최측근에서 보좌했습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도 류성룡의 능력은 출중했지만, 전란의 시기에 그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하였는데요.
류성룡을 신뢰한 선조는 임진왜란 동안 그에게 중요한 직책들을 맡깁니다. 지금으로 치면 국방부장관, 총리, 전시군사총지휘관, 수도방위사령관까지 겸임한 것입니다.
그는 전란 도중에 전투력 강화를 위해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면천법을 실시했으며, 지방에서 조정으로 올리는 공물을 현물이 아닌 쌀로 대체하여 올리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할 대책도 마련했습니다.
일본군이 두려워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압록강을 넘어 아예 명나라로 건너가고자 했던 선조를 신료들을 이끌고 저지시킨 인물도 류성룡입니다.
거기에 더해 전란을 빨리 극복하고자 명나라에 파병요청을 주도하는 등 임진왜란 동안 사실상 조선을 움직이는 위치에 있으면서 나약하기만 했던 조선을 변모시킵니다.
하지만 그의 개혁적 행보는 많은 지주들과 신료들에게 적대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결국 왜란이 끝나면 하삼도 지방을 왜국에게 건네고 화친을 도모하려 했다는 음모와 명나라의 병주자사 정응태가 조선이 왜국과 손을 잡고 명나라를 치려한다는 무고에 대하여 진상을 해명하러 명나라 사신으로 가라는 선조의 명을 거역해 선조와의 사이가 멀어집니다.
류성룡과 정적이었던 북인 세력은 이 틈을 이용해 그를 탄핵하였고, 이를 받아들인 선조는 1598년 11월 19일 류성룡을 파직시킵니다.
이날은 이순신 장군님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날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조선의 두 대들보이자 충신이었던 두 사람이 동시에 사라진 것입니다.
파직당한 류성룡은 고향으로 낙향하게 됩니다.
이후 그의 무고가 밝혀지면서 복권이 이루어지고, 조정으로 다시 출사하라는 조서가 계속 오지만 류성룡은 이를 거절합니다.
류성룡은 고향에서 자신이 겪었던 임진왜란 7년의 기록을 남기는 작업을 하였고, 그의 노력으로 징비록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고향에서 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뜹니다.
왕을 대신해 일선에서 최선을 다했던 류성룡이 있었기에 조선은 전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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