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사명대사가 말한 조선의 보배
서산대사의 제자로 유명한 사명대사.
사명대사의 법명은 유정 입니다. 하지만 당호인 사명당으로 더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는 승려의 몸으로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이 닥치자 몸소 의승을 이끌고 전장에서 왜군과 싸워 전공을 세웠습니다.
숭유억불의 조선에서 그는 혁혁한 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절충장군 호분위 상호군의 교지를 받고 당상직까지 오릅니다.
거의 파격에 가까운 조치였는데요.
대사는 국방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팔공산성과 금오산성, 용기산성, 남한산성, 부산성 등을 축조하고 투항한 왜군 조총병을 비변사에 보내 조총 사용법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사명대사하면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594년 사명대사에게 울산 서생포에 있던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의 진중을 찾아가 왜군의 동정을 살폈습니다.
이때 사명대사와 가토 기요마사가 나눈 문답이 유명한데요.
자신의 진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온 사명대사 유정을 보고 가토 기요마사가 "대사. 조선의 보배는 무엇이오?"라고 묻습니다.
이 물음에 사명대사는 "조선의 보배는 조선 것이 아니라 일본 것이오." 라 답했습니다.
대답을 듣고 의아해하며 가토가 그 보배가 무엇인지를 다시 사명대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명대사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당신 가토의 머리를 보배로 생각하오."라고 답했습니다.
당시 왜군 제2선발이었던 가토. 조선에서 이를 갈고 있는 적장 중 하나였기 때문에 가토의 목을 베어 바친다면 조선에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조선 백성들의 원한을 샀던 그의 머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했겠습니까?
사명대사의 대답을 들은 가토 기요마사는 놀라기도 했지만 찬탄을 금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적진에 들어가 적장 앞에서 '너의 목이 가장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자칫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 말이죠.
이 일화가 유명해져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이후 1604년 일본에 포로 석방차 방문했을 때 왜인들이 "이 사람이 보배 이야기를 했던 그 화상(설보화상)인가?"라고 입을 모았다고 합니다.
이때도 임진왜란 당시 잡혀갔던 조선인 포로 3500여명을 구출하여 함께 귀국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 1610년 8월 26일 설법하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니 대사의 나이 67세, 법랍 51하(夏) 였습니다.
전란이 일어나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승병을 이끌고 직접 전투를 했던 사명대사.
적진에 들어가서도 대범함을 보였던 그는 말만 앞세우는 종교인이 아닌 실천하는 종교인으로 수많은 대중의 모범을 보인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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