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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민

 

미천한 소금장수의 아들이 고려 최고 권력자가 되다 - 이의민

 

이의민은 고려 후기 상장군이며 동중서문하평장사 판병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이자 무신집권자 였습니다.

 

그는 최충헌과 더불의 무신정권의 황금기를 연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의민의 아버지는 소금장수인 이선(李善)이며 어머니는 영일현 옥령사의 종이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의 신분이 미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의민

 

하지만 그는 이러한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어 경대승에 이어 13년간 무신정권 4대 집권자로 군림했던 인물입니다.

 

 

허나 영원할것 같았던 그였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며 한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집니다. 이번에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이의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의민은 키가 8 (대략 190CM) 이나 되는 거구였으며 힘도 장사였습니다. 젊은 시절 고향에서 형들과 함께 온갖 나쁜짓은 다 하고다녔던 동네 건달이었습니다. 이런 이의민 형제는 경주 안찰사 짐자영에 의해 체포가 되었고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이 고문으로 옥중에서 이의민의 두 형은 죽었지만 이의민만은 용케 살아남았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그를 가상히 여긴 김자양은 그를 추천하여 경군으로 발탁합니다.

 

수박희

 

경군에 들어간 이의민은 수박희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수박희는 두사람이 일정 거리를 두고 서서 손으로 힘과 기술을 겨루는것입니다. 고려후기 무인들의 무예 연마 수단으로 성행했는데 권법이나 권투, 손벽치기 등과 관련성이 있습니다.

 

이의민은 출중한 수박희 실력덕분에 의종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로인해 하급장교인 대정에서 단번에 정7품 별장으로 고속 승진하였습니다.

 

무신정변

 

1170 8, 정중부와 이의방이 보현원에서 무신정변을 일으켰고, 이에 이의민 역시 가담합니다. 이때 문신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이 이의민이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의민의 악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의종을 시해하는 이의민

 

1173년 그는 자신을 초고속 승진시켜줬던, 자신을 총해했던 의종을 살해하는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당시 이의민은 맨손으로 의종의 척추를 꺾어 죽였으며, 힘이 장사였던 그의 손이 닿자 의종의 등뼈는 뚝뚝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이 소리를 들은 이의민은 껄껄대며 웃었다합니다. 이후 죽은 의종을 이불에 둘둘 말아 가마소 두개 사이에 끼운 채 연못에 내다 버리기까지하는 비정함을 발휘합니다.

 

의종을 죽인 공을 인정 받아 그는 대장군으로 승진하였으며, 권력자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반대파에게 배은망덕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낙인이 찍혀버립니다.

 

이후 1174년 조위총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무반 최고직인 상장군에 오릅니다.

 

경대승

 

그러나 무신정변을 일으켰던 정중부가 경대승에 의해 제거되자 이의민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고 급기야 의종을 죽인 일로 경대승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경대승이 집권한 후 축하연에서 "선왕을 죽인 자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그대들은 술잔만 기울이고 있는 것인가!" 라고 일갈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경대승의 암살 위협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주변에 호위병을 세워두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경대승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자나도 죽이지 못한 경대승을 누가 먼저 죽였는고? 나보다 손이 빠른 놈이 있구만하고 기뻐했다 합니다.

 

허나 이는 경대승이 아닌 그의 측근 허승의 죽임이 잘못 전해진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경대승은 당연히 이의민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으며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의민은 병을 핑계로 고향 경주로 도망치듯 내려갑니다.

 

하지만 이의민에게는 또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의 숙적 경대승이 1183 7월 병을 앓다 30세의 나이로 요절을 합니다.

 

무신정권을 끝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고려 조정에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어리숙한 명종은 경대승의 권력 공백을 매우기 위해 이의민을 불러들였습니다.

 

이에 다시 개경으로 돌아온 이의민은 경대승이 갖고 있던 모든 실권을 장악했으며 중서문하평장사에 임명되고 1194년에 공신의 칭호까지 받게 됩니다.

 

이의민은 권력은 잡은 후 본성을 드러냅니다.

 

 

뇌물도 받고, 민가와 백성의 전답을 빼앗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버립니다. 그의 부인 최씨는 투기가 심하고 음욕이 대단했으며, 머슴과 간통하다 이의민에게 들켜 쫓겨납니다. 이의민 역시 부인 못지않게 여색을 밝혀 아내를 쫓아낸 후에 양갓집 예쁜 규수가 있으면 아내로 삼았고 실증나면 차버렸습니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을 계속 반복해서 했습니다.

 

쌍도자

 

그에게는 지순, 지영, 지광이라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요. 아버지를 빼닮고 그 권력에 힘입어 흉폭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셋중에서도 이지영과 지광이 더 심각한 지경이라 사람들은 두 형제를 쌍도자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쉽게 말해 쌍칼 같이 흉폭한 아들이란 악명을 떨쳤습니다.

 

 

영원할것 같았던 이의민은 뜻밖의 어이없는 사건으로 인해 몰락하게 됩니다.

 

 

이의민의 아들 중 이지영이 최충헌의 동생 최충수의 비둘기를 강탈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비둘기는 단순한 비둘기가 아니라 연락용 전서구로 추정이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관상용으로 기른 고가의 비둘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이 화근이 되어 결국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마침 명종이 보제사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의민은 병을 핑계로 수행을 거부하고 몰래 미타산 별장에 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최충헌과 최충수는 별장으로 가서 문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이의민이 그곳을 떠나려고 말을 타려 할 때 달려들어 죽였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던 이의민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이의민의 암살에 성공한 최충헌은 곧 개경으로 올라와 이의민의 머리를 거리에 효수했고 왕을 수행했던 이의민의 아들 이지순과 이지광은 최충헌의 부하들과 맞서 싸우다 수세에 몰려 도주해 버렸습니다. 이때 이지영은 안서도호부에서 기생들과 함께 주연을 즐기다 잡혀 죽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백성들은이지영이 죽었으니 우리는 이제 걱정이 없게 됐다며 크게 기뻐했다고 합니다.

 

이후 최충헌은 이의민의 3족을 멸하고 각 지방에 사람을 보내어 이의민의 도당들과 노예까지 다 잡아 죽였습니다. 도망친 이지순과 이지광이 돌아와 잘못을 빌었지만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최충헌

 

최충헌 형제로 인해 1184(명종 14)에서 1196(명종 26)까지 13년간 지속된 이의민 정권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최충헌의 시대가 왔으며 이를 시작으로 최씨무신정권시대가 개막되어 4 62년간 지속되게됩니다.

 

이의민. 그는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는것을 보여준 전형적인 케이스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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