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토지제도를 만든 우재 조준
조선이 건국될 때 경제전문가이자 조선의 토지제도를 만든 인물이 있었으니, 경제육전을 편찬하기도 한 그는 바로 우재 조준입니다.
조준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정치가로 본관은 평양이며 호는 우재이며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의 정치적 동반자였던 인물입니다.
1371년에 음서로 등용된 조준은 3년 뒤 함과에 급제하여 문관과 무관을 두루 거치게 됩니다. 그는 최영 장군 휘하에서 체찰사로 왜구를 토벌하기도 했습니다.
조준은 신진사대부의 일원이었으며, 그의 성향은 급진파에 속했습니다. 같은 급진파인 정도전과 뜻을 같이해 고려를 버리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창업하는데 공을 세웁니다.
그로인해 개국공신이 되어 정도전과 같이 태조 이성계의 총애를 받았고, 조선 개국의 경제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었습니다.
조준은 본래 경제와 이재에 밝아 고려 말 사전에 대한 폐단을 뜯어고치고 전제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토지제도의 기초를 만들어 냅니다.
이렇듯 조선이 건국되고 여러 방면으로 정도전과 함께 조선의 기틀을 다지던 조준은 한 사건으로 인하여 정치적 동반자 정도전과 갈라서게 됩니다.
그 사건은 정도전에 의한 요동정벌론이었습니다. 조준에게 요동정벌론이란 그저 이상일뿐이었습니다.
이미 이성계를 비롯한 조선 건국공신들이 고려 우왕시기에 요동정벌은 불가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위화도 회군을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조선이 건국되어졌는데 이는 자신들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라며 극렬히 반대를 합니다.
하지만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밀어붙혔고 이로 인해조준과 정도전의 사이는 벌어지게 됩니다.
또한 세자 책봉 과정에서도 정도전은 이성계의 막내아들 방석을, 조준은 조선 개국에 공이 많은 5남 이방원을 지지하며 그 둘의 사이는 더 멀어지게 됩니다.
조준의 정치적 입장은 자연히 이방원과 가까워져서 그와 친분이 두터워졌습니다.
조준은 제1차 왕자의 난 때 백관을 이끌고 적장을 후사로 정할 것을 건의한 후, 정종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도와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었습니다.
1400년 11월 이방원을 왕으로 옹립하고, 좌정승·영의정부사에 승진, 평양부원군에 진봉되었습니다.
이후에도 태종의 열렬한 총애를 받게 되고 이방원과 사돈까지 맺게됩니다.
조준은 신하로서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 후 1405년 60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조선초 경제기틀을 다지는데 큰 공을 세운 조준.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조선왕조의 뿌리가 튼튼해 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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