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사준사구 - 사준 (보오르추, 치라운, 보로클, 무칼리)
1206년 몽골 초원을 통일한 뒤 테무진은 오논 강변에서 칸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칭기즈칸이 된 그는 95개 천호 조직의 장을 임명하며 공이 많은 너흐르들에게 은전을 베풀었습니다. 여기에서 너흐르란 같은 혈족은 아니지만 형제나 다름없는 인간관계를 말합니다.
비슷한 말로 '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다 친구, 동무, 동지 등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만 둘사이의 차이가 있습니다.
친구처럼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진 관계는 '안다'
군신 관계 또는 주종 관계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너흐르' 입니다.
칭기즈칸은 은전을 베풀며 충성스런 너흐르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그들의 공을 치하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사준사구의 공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사준사구(四駿四狗)라 불리는 이들은 네 마리의 충성스런 준마와 충견을 뜻하며,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하는것을 도운 당대 최고의 문무를 겸비한 유능하고 충성스런 부하들이었습니다.
사준은 내정과 전략에서 활동한 인물이며, 사구는 전투에서 공훈을 발휘한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네마리 준마 사준에는 보오르추, 치라운, 보로클, 무칼리가 있으며, 네마리 충견 사구에는 제베, 쿠빌라이, 젤메, 수부타이 가 있습니다.
먼저 네마리 준마 사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오르추
테무진의 친구이자 첫 신하. 보고르추라고도 합니다. 보르추는 테무진이 고난의 시절 만난 안다였습니다. 아틀라트 씨족의 사람이며 태무진이 당시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말을 도둑맞았을 때 말을 찾아 초원을 헤매다 만난 친구입니다. 그에게 말을 빌려주어 추적을 도와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보오르추는 칭기즈칸을 여러번 위기에서 구해냈으며, 메르키트 부족의 습격, 타타르 부족, 케레이트 부족과의 전쟁 때 칭기즈칸과 생사를 함께해 창업에 공헌했습니다. 이 때문에 다르한의 자격이 부여되어 알타이 산맥 방면의 몽골군을 관할하는 우측, 즉 서쪽의 만호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서하 원정 도중인 1226년에 병사합니다. 사후 그의 일족은 몽골 제국의 4대 명문(무칼리, 치라운, 수부타이, 보오르추 일족) 중의 하나로 권세를 떨치게 됩니다.
치라운
치라운은 테무진이 포로로 잡혔다가 칼을 쓰고 탈출했을 때 테무진을 숨겨주고 탈출시킨 인물입니다. 아버지 소르칸 시라와 형 침바이, 여동생 카다안과 함께 테무진을 보호해줬습니다. 치라운 가문은 타이치우드 씨족의 잡일을 도맡던 노예 가문이었으나 이 때의 인연으로 칭기즈칸의 사준 중 1인이 되고 그 자손들은 원나라 4대 명문으로 부귀를 누립니다. 1201년에 칭기즈 칸이 메르키트족과 쿠이텐에서 전쟁을 벌일 때 그의 부하가 되어 용맹을 떨쳤습니다. 이 전투중 치라운이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초원에서의 전투에서 말에서 떨어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치라운은 침착하게 창을 고쳐잡고 적의 기병과 맞서 싸워 적군 몇을 떨어뜨릴 만큼 용맹히싸웠습니다. 이 모습을 본 칭기즈 칸이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칭기스칸은 치라운에게 말할 것이 있거나 부족한 것이 있으면 중간에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직접 말하고 청하라고 지시했을만큼 그를 신임하였습니다. 치라운은 오고타이 칸때에 금나라 정벌에 참여했다가 전사합니다.
보로클
전장에서 발견되어 칭기즈칸의 어머니 호엘룬이 키운 인물이 보로클 입니다. 테무진과 함께 자라면서 형제 대접을 받았습니다. 케레이트군과의 전쟁을 벌인 카라 탈지트 전투에서 빈사 상태에 빠진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 칸의 상처를 입으로 피를 빨아 치유한 뒤에 말에 태워 구출하는 공을 세웁니다. 그 공을 인정 받아 음식을 맛보는 직책인 부케울과 요리하는 직책인 바우르치에 임명되었고 이후에는 음식을 관리하는 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사준 중 한명이 왜 음식을 관리하는 장군이 되었을까 의아해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당시 몽골에서는 음식을 관리하는 것이 전투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이라 여겼습니다. 보로클은 1217년 몽골 북동쪽 삼림지대의 수렵민족 투마트 족과의 싸움에서 전사해 비교적 일찍 칭기스칸의 곁을 떠났습니다.
무칼리
무칼리는 자라일족 사람으로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인물로 칭기스칸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원래 숙적 자무카의 수하였으나 그 비정함에 실망해 칭기즈칸에게 귀순한 인물입니다. 1196년부터 칭기즈 칸을 따라 전쟁에 참여하여 몽골 고원의 통일에 공을 세웠고, 1206년에 좌익의 만호장에 임명됩니다. 1207년에 칭기즈 칸이 제1차로 서하를 공격하는 데 참전하였으며 1211년에 제베와 함께 금나라 1차 정벌 때 선봉으로 참전하였습니다. 1213년에 칭기즈 칸이 직접 금나라 2차 정벌에 참전하면서 만리장성에서 몽골의 7만의 군사가 금나라의 65만의 병력을 격파하자 군사들을 지휘하여 제남, 장안, 요서, 요동 등의 금나라의 화북 지방의 주요 영토를 함락하였습니다. 이 공을 인정받아 칭기즈 칸으로부터 화북 일대를 통치권을 받아 국왕의 칭호를 받아 무칼리 국왕가를 이루게 됩니다. 4준 4구 중에 최고의 지위를 받았으며 그 자손들 까지 원나라 최고의 세습귀족이 됐습니다. 소수의 병력으로 금나라 군벌들과 각지의 반란을 막은 그였지만 1223년 무칼리는 잦은 출정으로 인해 과로로 병사합니다. 무칼리가 동북아쪽을 확실히 담당해줘서 칭기즈칸은 내부 반란을 진압하고 호라즘을 정벌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칭기즈카의 네마리 준마인 보오르추, 치라운, 보로클, 무칼리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네마리의 충견 사구 제베, 쿠빌라이, 젤메, 수부타이는 다음 포스팅에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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