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국정원장 - 복지겸
고려 초 오늘날 국정원장과 같은 임무를 수행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복지겸 입니다.
고려의 기병 대장이자 개국공신이며, 면천 복씨의 시조인 복지겸.
그의 초명은 사귀, 시호는 무공입니다.
그는 원래 태봉의 마군장군으로 있다가 궁예가 횡포해져 민심을 잃자 배현경, 신숭겸, 홍유와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합니다.
왕건의 4기장 중 한명으로 이 거사가 성공한 후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됩니다.
다른 1등 공신들의 이력을 보면 신숭겸이야 말할 필요없는 왕건의 남자이며, 배현경은 군졸이었다가 담력과 용맹이 남달라 출세를 한 인물이었습니다. 홍유는 태조 원년부터 유금필과 함께 청주의 반란을 억누르는 등 야전 지휘관으로서 군공을 쌓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일개 병졸에서 뛰어난 무예 실력으로 왕건의 충신이 된 배현경
👉👉왕건을 대신 해 죽음을 맞이한 신숭겸 장군의 무덤이 3개인 이유
하지만 앞의 세명에 반해 복지겸의 군공에 대해서는 전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직책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원래 군사적 능력이 다른 셋에 비해 떨어졌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기록이 중간에 소실이 된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어디에서 종군했다는 기록조차 없습니다.
적어도 고려사나 다른 사료에 그가 전쟁터에 나가 공을 세웠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홍유, 배현경, 신숭겸이 야전장수 타입이라고 한다면, 복지겸은 도성 경비 및 감찰을 맡은 왕건의 최측근 무장으로, 요즘의 국정원장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뛰어난 야전사령관이었던 동료들과는 달리 역성혁명 후 혼란한 시기에 모든 반역 음모를 잡아내면서 왕권 안정에 기여를 한 인물이 복지겸입니다.
장군 환선길의 반역 음모를 감지한 후 태조 왕건에게 밀고한 후 환선길을 주살하여 반역을 막았습니다.
순군리 임춘길의 모반도 평정하는 등 공을 세웠으나, 그 이후의 복지겸 행적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994년에 태사로 추증되어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이때 토지 180만평을 하사하여 후손들이 대대로 세식하게 하였으며, 그 묘는 경기도 광주에 있습니다.
복지겸 그는 왕건을 추대해 고려 개국에 큰 공을 세웠으며, 혼란한 고려 초기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데 최선을 다한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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