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병졸에서 왕건의 장군으로 - 배현경 장군
일개 병졸에서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충직한 신하 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배현경입니다.
배현경은 고려 전기의 무신으로 경주 출신이며, 초명은 백옥삼이며 아들로는 배은우를 두었습니다.
궁예가 처음 몸을 일으킬때 일개 병졸에 불과하였으나 뛰어난 무예 실력을 자랑하며 전장에서 수많은 공을 세워 마군장군까지 승진한 입지전적의 인물입니다.
궁예의 계속된 폭정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신숭겸, 홍유, 복지겸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해 고려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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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즉위 후 1등공신이 되었고,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많이 세워 1등공신으로 녹훈되었습니다.
그는 다재다능한 장수로, 전장에서 그의 능력을 필요로 할 때는 장군으로, 중앙정부에서 그의 능력을 필요로 할 때는 정치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배현경 장군은 왕건을 보좌할 때 잘못된 점이 있으면 항상 숨김없이 직언을 올리는 인물이었습니다. 즉 할말은 할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요. 그런 배현경을 왕건 역시 신뢰하였고 배현경의 직언이 있으면 그 문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고 다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왕건이 인사문제에 대해서 좋게 넘어가려고 하면 잘못된 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소신 있게 행동하였습니다.
그중 유명한 사례로 왕건이 청주 출신인 현률에게 정2풍 순군낭중을 재수하려 했는데요. 문제는 순군낭중이라는 직책은 야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자리였습니다. 배현경은 왕건에게 현률을 순군낭중을 재수하면, 동향출신들과 모의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하였습니다.이에 왕건은 현률에게 야전지휘권이 없는 병부낭중직으로 급을 낮추어 재수하였습니다.
배현경은 정1품 대광 벼슬을 재수받았으나 아쉽게도 고려가 통일을 하자마자 936년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배현경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왕건이 친히 배현경을 찾아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 천명이로구나. 하지만 그대의 자손이 있으니 내 어찌 그대를 잊으리!"
이렇게 말을 하였고, 왕건이 손을 놓고 문을 나서자 그가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태조는 어가를 멈추고 관비(나랏 돈)로 장사를 치를 것을 명한 후에 환궁하였습니다.
배현경은 994년(성종 13)태사로 추증되어 태조 묘에 배향되었으며, 그의 시호는 무열입니다.
일개 병졸에서 왕건을 도와 많은 공을 세운 배현경 장군. 그는 일생을 왕건을 위해 그리고 고려를 위해 살다 간 충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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