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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꿨던 소현세자

 

두 차례의 호란을 겪고 볼모로 청나라에까지 끌려갔던 세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소현세자입니다.

 

소현세자

 

소현세자의 이름은 이왕으로 1612년 조선의 16대 임금인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6남 1녀중 장남이었습니다.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낸 조선의 두 번째 반정인 인조반정을 통해 아버지 능양군이 인조로 왕위에 올랐고, 1625년 이왕은 세자로 책봉이 됩니다.

 

 

세자 책봉 후 2년 뒤인 1627 1월 중순부터 3월 초순까지 만주에 본거를 둔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정묘호란이 발발하였고 정묘호란 도중 강석기의 딸(민회빈 강씨) 과 소현세자는 혼인을 합니다.

 

세자빈 강씨

 

조선이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여진족의 나라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1636년 조선을 공격해오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청은 조선을 공격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진격을 해온데 반해 조선은 미처 대비를 하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그로 인해 청에 왕실의 식구들이 잡히게 되고, 인조는 강화도로 가지 못하고 남한산성에 갇히게 됩니다.

 

끝까지 항전을 외치던 인조는 자신의 가족들이 붙잡히자 항복을 하게 됩니다.

 

삼전도의 굴욕

 

인조는 단상 위에 앉은 후금의 황제 홍타이지에게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려 황제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시하는 인사법인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며 항복했는데 이 사건이 바로 한민족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지는 삼전도의 굴욕입니다.

 

청나라에게 치욕적으로 패배하면서 동생인 봉림대군과 함께 볼모로 청나라의 심양으로 끌려간 소현세자.

 

독일인 신부 아담샬

 

그곳에서 소현세자는 청이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룬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고 자신도 조선으로 돌아가면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으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홍타이지의 명령에 의해 명나라와 청나라가 싸우는 곳에 출전하기도 했는데요. 전쟁에서 청이 명을 쓰러뜨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나라는 명이 아니라 청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소현세자는 홍타이지의 동생 도르곤과 친해지려 노력을 했고, 아내 강빈의 권유로 묵던 근처에 농장을 만들고 끌려온 조선인들을 노예 시장에서 구출해내서 농장에서 일하게 하는 등의 노력도 했습니다.

 

여기서 얻은 곡물로 장사를 하니 세자의 거처가 마치 시장과도 같았다고 합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하며 소현세자는 상당한 재물을 얻어 청나라 관료들과의 교류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소용 조씨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끌려가서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었지만 인조의 후궁인 소용 조씨의 이간질로 인해 인조의 의심을 사게 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인 인조의 정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인조는 청나라가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를 앞세워 자신을 몰아내고 조선의 왕권을 교체할까 두려워합니다.

 

도르곤

 

1645년 청나라의 실권자인 도르곤이 소현세자의 영구 조선 귀국을 허락하면서 소현세자는 볼모 생활 9년만에 조선으로 귀국합니다.

 

하지만 인조는 이미 소현세자를 숙청하고 그 혈손들을 왕위 계승권에서 배척할 계획을 세웁니다. 9년만에 귀국한 세자와 세손들에게 그간 고생에 대한 위로의 말이나 귀국 축하 연회, 치하 등 어떤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현세자를 바라보는 인조와 조정 중신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문후도 받지 않고 냉대하기만 하였습니다.

 

 

 

조선으로 귀국한 지 3달도 못된 1645년에 소현세자는 병을 얻어 갑자기 사망합니다.

 

그의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수많은 의문을 남기게 되는데 대표적 의문이 과연 인조가 소현세자를 죽인 것인가라는 부분입니다.

 

 

소현세자가 죽은 이후 인조의 행보를 보면 세손을 포함한 소현세자의 세 아들을 제주도로 유배 보내버리고 세자빈 강씨는 역모로 사약을 내려 죽여버립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꿨던 소현세자는 이렇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였고, 왕통은 그의 동생이었던 봉림대군에게 이어지니 이가 곧 효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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