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유장에서 당나라의 대장군이 된 흑치상지
백제가 멸망하고 부흥운동을 벌이다 당나라에 항복을 하고 거기에서 공을 세워 대장군이 된 인물이 있습니다.
자신이 살던 나라를 멸망시킨 나라에 항복을 했으니 반역자라 불러야 할까요?
당나라에서 대장군의 지위에까지 올랐으니 영웅이라 불러야 할까요?
이 사연의 주인공은 백제의 유장이자 당나라 대장군이었던 흑치상지입니다.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입니다.
백제의 달솔은 오늘날의 국방부 차관 같은 꽤 높은 자리였습니다.
흑치상지는 키가 180cm가 넘었으며 동작이 날쌔고 힘이 장사였으며, 지혜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660년에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이후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백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습니다.
나날이 커진 흑치상지의 세력은 열흘이 채 안 되어 3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주류성을 거점으로 삼은 복신과 도침의 부흥군 세력과도 연합하였으며 흑치상지가 이끄는 백제 부흥군은 무서운 기세로 당군을 격파하며 백제 200여 성을 수복하는 성과를 거둡니다.
이로써 백제가 다시 살아나는 듯했지만 곧 내부 분열이 일어납니다.
복신에 앙심을 품은 부여풍이 그를 죽여버리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백제 부흥군은 백강 하구에서 벌어진 나당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대패합니다.
이후 주류성 등 부흥 운동의 주요 근거지들이 줄줄이 함락됩니다.
남은 건 오직 흑치상지가 지키는 임존성뿐이었습니다.
사방으로 포위된 상황에서 흑치상지의 고민은 깊어갔습니다.
이때 당나라 고종은 흑치상지가 백제의 뛰어난 무장임을 알고 사신을 보내 항복을 권유합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흑치상지는 결국 당나라에 투항하는 길을 선택했고 당나라 장수 유인궤에게 가서 항복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키던 임존성을 함락시킵니다.
거기에 더해 부여풍이 지키는 나머지 성을 공격해 빼앗았습니다.
그렇게 백제 부흥운동은 막을 내리고 맙니다.
당나라로 건너간 흑치상지는 당나라 장수로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는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공을 인정받아 수많은 직책들을 부여받습니다.
특히 토번과 돌궐을 정벌하는데 많은 공을 세웁니다.
돌궐의 장수 골졸록을 크게 격파한 흑치상지는 우무위위대장군 신무도경략대사라는 벼슬을 받으며 그 당시 최강대국 당나라의 대장군이 되었으며, 당나라의 7대 장수로 손꼽혔습니다.
당 측천무후는 백제가 흑치상지가 있었는데 나라를 왜 잃었는지 모르겠다 고 하였을 정도로 그의 명성과 무위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하지만 그런 흑치상지에게도 불행이 찾아오는데요.
689년, 흑치상지의 나이 60을 앞둔 해에 조회절이라는 자가 반역을 일으켰는데 평소 흑치상지를 음해하던 무리가 황제 앞에서, 흑치상지가 반역의 무리에 가담했다는 모함을 합니다.
처음에 황제는 이 말을 믿지 않았지만 '제 나라를 멸망시킨 당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흑치상지가 의심스럽다'는 신하들의 말에 황제도 귀가 솔깃하게 됩니다. 그들은 흑치상지가' 신임을 얻어 옛 원수인 당나라에 그 한을 갚으려한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이에 흑치상지는 옥에 갇히게 되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내가 내 고향 백제를 버리고 여기까지 왔다만, 이런 누명을 쓸 줄이야 몰랐구나.”라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흑치상지가 사망하고 10년 뒤 그의 아들 흑치준의 노력으로 반역의 누명을 벗고 낙양의 북망산으로 이장되었습니다.
더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백제부흥운동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접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던 흑치상지.
그는 배신자였을까요? 이민 세대의 성공자이자 영웅이었을까요?
조국인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에서 대장군 벼슬까지 한 것을 보면 배신자라 볼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의 출중한 능력으로 강대국 당나라에서 출세한 것을 보면 영웅이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를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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