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역사가 한국의 역사인 이유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이 지난 698년에 대조영이 옛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인을 규합해 지금의 중국 만주 일대에 세운 국가인 발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연해주 일대에 위치한 군주제 국가로 한국사의 역대 국가들 중 면적이 제일 넓은 나라가 발해였습니다.
이런 발해를 중국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우기며 동북공정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발해가 당의 지방 정권이었다 말하며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영역인 만주에 세워졌던 나라가 발해였고, 발해인들의 상당수를 구성했던 말갈족의 후손이 지그 중국의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그렇게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리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 해동성국 발해는 중국이 아닌 우리의 역사입니다.
발해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인 이유와 근거들이 있습니다.
1. 발해 왕들은 스스로 고구려 국왕이라 칭하고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점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중국의 역사서인 구당서에도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고구려의 별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발해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국가였습니다. 연호는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국가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뜻하는데요. 만약 중국측의 주장에 따른다면 발해는 연호를 사용하면 안됩니다. 당의 지방정권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3. 발해인들은 당나라의 과거 시험인 명경과나 진사과가 아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 시험인 빈공과에 응시했습니다. 이 사실만 봐도 중국의 지방정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김육불이 지은 발해국지장편을 보면 발해의 지배층은 왕족인 대씨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고구려 왕족인 고씨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발해의 제도나 이념은 고구려의 것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발해의 유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고구려 문화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온돌과 기와 등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특히 온돌은 다른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생활양식입니다.
이렇듯 발해의 역사는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역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발해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고' 에서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탐구하지 않아 만주 땅을 잃어버렸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새겨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발해에 대해 관심을 갖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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