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일본군이 상상하지 못했던 조선의 의병
1592년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으로 인해 임진왜란이 일어납니다.
임란 초기 조선군은 연전연패했으며, 잇따른 패전 소식을 듣고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납니다.
일본군과 맞서 싸워야 할 수령들과 관군들마저 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이런 조선을 마음껏 유린하던 일본군들.
하지만 그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조선의 복병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의병입니다.
자신의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해, 나아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났던 조선의 백성들.
일본은 전국시대 당시 병사와 농부가 분리되어 있었고, 병사는 싸움만, 농부는 농사만 지으면 되었습니다. 자신이 속한 다이묘가 패하면 그뿐, 다시 다른 다이묘에 소속이 되어 하던 일만 계속하면 되었던 일본은 조선의 의병 집단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어났던 의병들의 의병장은 대다수가 전직 관리나 유학자였으며, 의병의 신분은 양반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의병장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홍의장군 곽재우 일 것입니다. 경상도 의령의 선비였던 그는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인물이며 전라도로 향하는 일본군을 차단하는데 공을 세웁니다.
곽재우가 의병을 일으킨 이후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납니다.
이들은 임란 초기의 전세를 역전시켜 일본군에게 빼앗겼던 여러 지역을 수복합니다.
정규 훈련도 받지 않았고, 무기도 열악했으며, 숫자도 적었지만 지리가 밝다는 이점을 살려 소규모 게릴라 전투를 벌였던 의병들은 여러 차례 일본군을 물리칩니다.
의병들의 승전 소식이 조정에도 전해지니 이전까지 비조직적이었던 의병이 관군과 연합을 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더해 식량과 무기까지 지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의병에 비해 관군은 전의가 부족했고, 1차 금산성 전투에서 관군과 의병의 연합작전이 실패하면서 전라도 지역 의병장들이 모두 전사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한달 뒤 2차 금산성 전투에서도 관군이 합세하기로 했다가 오지 않아 의병 700명만 싸우다 모두 전멸하게 됩니다. 이때 의병들의 유골을 모아 만든 무덤이 칠백의총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관군과 의병의 연합이 실패만 한 것은 아닙니다.
김시민 장군이 이끈 1차 진주성 전투인 진주대첩. 진주대첩 당시 경상 의병장 홍의장군 곽재우, 전라의병장 최경회, 김준민, 조응도의 의병 부대들이 일본군 배후를 습격해 진주성 사수에 많은 힘을 보태었고 진주대첩을 이끌어내며 일본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임진왜란 일본군을 벌벌떨게 만들었던 김시민 장군과 진주대첩<<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돌보지 않고 일어난 의병들.
하지만 우리의 선조는 명나라군이 참전한 이후 의병들을 대하는 태도가 싸늘해집니다.
선조는 전쟁이 끝나면 의병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의병을 해체시키기 시작합니다.
거기다 선조는 전국 의병장들의 수장이었던 김덕령에게 1596년에 일어난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씌워 처형시켜버리기 까지 했으니, 이때 김덕령의 나이 겨우 29세였습니다.
이몽학의 난 때문에 곽재우 역시 문초를 받았지만 다행히 무죄로 풀려납니다. 그러나 곽재우는 비록 무죄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조선 왕조에게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벼슬을 사양하고 낙향하고 말았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 선조는 또 선조 다운 짓을 하게 되니...
임진왜란을 극복한 것이 명군의 참전과 본인이 의주로 피난을 간 덕분이라고 주장합니다.
조선의 백성이 스스로 들고일어나 의병이 되어 얻었던 성과를 스스로 격하시킨 것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백 년이 지난 2010년 5월 25일 우리나라는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 22일의 양력 날짜인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 일어나 최선을 다해 싸운 의병장들, 역사에 이름 석자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의병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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