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최초의 쿠데타를 성공하다 - 강조
고려사 최초의 쿠데타를 일으키고 성공하여 권력을 잡은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강조입니다.
강조는 황해도 출신으로 신천 지방의 호족 출신이며 본관은신천 강씨입니다. 궁예의 정비 강씨가 그의 고모였으며, 왕건의 22번째 부인인 신주원 부인 강씨의 친정 일족이었습니다.
김치양 일당으로 부터 위기에 처한 목종이 자신을 보좌할 인물로 강조를 선택했을 만큼 왕실의 신뢰를 받았지만 오히려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시해하고 현종을 옹립한 고려 초기의 권신입니다.
강조는 서북면 도순검사로서 북방 군대를 휘하에 두고 있었는데요.
어머니 천추태후의 내연남인 김치양이 자신을 제거하려하자 목종은 강조를 불러 자신을 지키게 하였는데요.
하지만 이때 개경에는 목종은 이미 죽고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이 소문을 접한 강조는 군사5000명을 이끌고 개경을 내려오는데 목종이 죽었다는 소문은 헛소문이며 목종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에 어찌할지 주저하던 강조는 멈추었던 군대를 다시 움직여 개경 궁궐로 쳐들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한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대량원군)을 옹립합니다. 거기에 더해 폐위시킨 목종을 죽여버리기까지 합니다.
이후 천추태후를 황주로 유배보내버리고 김치양과 그의 6살 아들, 목종에게 빌붙어 전횡을 일삼던 유행간 등을 처형하고 자신이 권력을 잡는데 걸림돌이 될 만한 사람들을 모조리 제거해버립니다.
왕까지 죽여버린 강조는 이부상서 및 참지정사가 되어 고려 최고의 권력자로 등극합니다.
이제 강조는 고려가 자신의 천하라 생각하고 있었을텐데요.
그런 그이게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우니, 북방의 거란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거란이 새운 요나라의 성종은 목종을 함부로 시해한 반역자 강조의 죄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1010년 의군천병이란 이름을 붙인 40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고려를 침공해옵니다.
하지만 거란의 실제 의도는 송나라와의 교류를 완전히 차단하여 고려와 거란간의 관계를 재차 확인시키고, 강동 6주를 되찾으려는 데 있었습니다.
중원을 차지하려는 야망이 있었던 거란의 요나라는 송나라와 친하게 지내던 후방의 가시같은 고려를 먼저 공격해 후방을 든든히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침 강조의 정변으로 인해 고려 내부가 혼란스러워지니 망설일 것 없이 바로 공격해온 것입니다.
요나라의 침공 소식을 듣고 강조는 행영도통사가 되어 직접 3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전합니다.
요나라는 고려의 맹장 양규장군이 지키는 흥화진에 점령하지 못하고 고전을하였고, 이에 요 성종은 동대를 귀주 방면으로 보내고 본대는 빠르게 강조가 주둔한 통주로 진군합니다.
처음 전투에서는 검차 등의 무기를 이용해 고려군이 승리를 거둡니다. 이에 강조는 긴장이 풀렸는지 방심을 하게 되는데요.
이때 요나라가 소수의 부대를 이용해 치고 빠지는 속도전을 벌입니다.
그로인해 강조 자신이 있는 진영이 뚫려버렸지만, 보고를 받고도 강조는 이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때 강조의 부대를 격파한 선봉 부대는 우피실군으로, 기동력까지 뛰어난 거란 최고의 정예병들이었습니다.
전체 부대를 셋으로 나누어 요나라와 싸우던 강조는 다른 두 진영이 협공하기 전에 자기 진영이 무너졌음을 알고 크게 괴로워합니다.
전투에 대패한 강조는 요나라에 포로로 잡힙니다.
요나라의 성종은 강조와 그의 부장 이현운에게 요나라의 신하가 될 것을 권유하지만 강조는 "나는 고려 사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다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런 강조와는 달리 그의 부장 이현운은 고려를 배신하고 요나라의 신하게 됩니다.
정변을 통해 실권을 잡았지만 뭘 해보기도 전에 요나라와 싸워야 했던 강조.
집권 초기 권력 기반을 다지기도 전에 일어난 전투로 인해 30만 대군을 직접 지휘해야했던 강조.
권력 기반을 다지고, 30만 대군을 이끌 수 있는 믿을만한 수하가 있었다면 강조도 직접 전투를 지휘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고려 최초의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고, 왕을 시해했지만 자신이 왕이 되려는 생각은 없었던 강조.
요나라에게 대패했지만, 마지막에 고려 장수로서의 절개는 지킨 강조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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