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김숙흥 장군

 

고려 거란 전쟁의 영웅 김숙흥 장군에게 무사도를 가르친 어머니

 

김숙흥 장군은 고려 전기의 무장으로 2여요전쟁(고려-거란)의 영웅으로 양규 장군과 함께 활약합니다.

 

요나라(거란) 성종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해 개경을 함락시키고, 고려의 포로들을 데리고 거란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김숙흥 장군

 

이때 김숙흥 장군은 구주의 별장인 중랑장 보량과 함께 거란을 공격해 1만여 명의 목을 베어버립니다.

 

이런 김숙흥 장군의 어머니 이씨는 유복자인 아들의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썼는데요.

 

 

"너는 무인 집안 출신이다. 조상들에게 특히 너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아니할 만큼 씩씩한 무장이 되어야 한다." 라며 김숙흥 장군에게 일찍부터 글을 가르치는 한편 무사의 정신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 숙흥이 불에 다리가 데어 울고 있자 "네가 이만한 아픔을 참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장수가 될 수 있겠느냐?" 라며 젓가락을 불에 달구어 가지고 숙흥 앞에 내보이면서, "네가 어리석게 울기만 한다면 이것으로 지져줄 테다." 말했고 이에 놀란 아들 숙흥은 울음을 뚝 그쳤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어머니 이씨는 어느 날 살아있는 두꺼비 한 마리를 잡아다 아들에게 익히지도 않고 날 것으로 뜯어먹어라 말했습니다. 이에 아들 숙흥은 차마 살아있는 두꺼비를 먹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는데요. 어머니 이씨는 "전쟁에 나가면 음식을 입에 맞게 먹을 수 없는 일이 허다하다. 때로는 못 먹을 것으로 배를 채워야 하는 일도 있을 터인데, 지금부터 그것을 익혀두어야 후일에 고생을 덜 하지 않겠느냐. 눈 딱 감고 한 입 베어보아라." 라며 아들에게 말합니다. 이에 김숙흥 장군은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두꺼비를 생으로 씹어 먹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로부터 강하게 크는 법을 배운 김숙흥 장군은 씩씩하고, 용감했으며 어지간한 어려움은 참고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단련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이씨가 바란대로 아들은 훌륭하게 장성했고, 군인이 되어 귀주성을 지키는 귀주 별장이 됩니다.

 

김숙흥 장군

 

귀주별장으로 복무하던 아들은 홀어머니를 뵙기 위해 며칠 휴가를 받아 집으로 갑니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 반가울 법도 하지만 어머니는 집안으로 아들을 들이기는커녕 중한 임무를 두고 집으로 왔다며 아들을 책망하고, 바로 돌아가라고 하는데요.

 

 

이에 김숙흥 장군은 당황하며  "내일이 어머님 생신이 아닙니까. 하루 밤만 자고 가겠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라며 눈물 흘리며 어머니를 바라보지만 어머니 이씨는 "아들아, 네가 지금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아라. 귀주성은 거란과 인접한 중요지점이다. 네가 성을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찌할 것이냐? 임금을 섬기는 몸이 사사로운 일을 위해 먼 길을 달려오는 것은 너 답지 않은 행동이다. 여러 말하지 말고 이 길로 바로 돌아가거라. 어미의 생일은 내년에도 온다.

나라가 평온해지면 그때 생일잔치를 해도 늦지 않을 터, 지금은 당장 성으로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아들로 치지 않을 것이다." 라 말하며 아들을 돌려보냅니다.

 

돌아서서 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 이씨도 오열하는데요. 오랜만에 집으로 온 아들이 왜 반갑지 않았겠습니까? 유복자인 아들 하나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왔으니,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너무 매몰차게 아들에게 한 것이 아닌지 후회를 하다가도 이내 도리질을 치는 그녀였습니다. 거란이 쳐들어와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이었으니 아들을 돌려보낸 것이 맞다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돌아간 김숙흥 장군은 한 달 사이에 일곱 번을 싸워 일곱번을 다 이깁니다.

 

무로대에서 사로잡혀있던 고려인 3천여명을 되찾기도 했습니다.

 

양규 / 김숙흥

 

1011 1 28, 김숙흥 장군은 양규 장군과 함께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인 애전에서 거란의 선봉 부대를 요격해 1천여명의 목을 벱니다.

 

하지만 이후 거란의 성종이 직접 이끄는 본대가 도착을 합니다.

 

거란 황제의 친위 군이었던 만큼 꽤 많은 병력이 양규 장군과 김숙흥 장군의 부대를 포위합니다.

 

 

중과부적인 것을 알지만 양규 장군과 김숙흥 장군은 철수하는 거란군에게 최대한 타격을 입히고, 구출한 고려 백성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전투에 임합니다.

 

양규/ 김숙흥

 

그리고 결국 휘하의 고려군과 함께 양규 장군과 김숙흥 장군은 최후까지 싸우다 화살을 고슴도치처럼 맞고 사망합니다.

 

이들의 전투 소식을 들은 고려군들은 고무되었고, 특히 양규의 임지였던 흥화진에서는 거란군이 압록강을 건너려는 순간에 그들의 배후를 공격해 큰 피해를 입힙니다.

 

👉👉👉고려 무쌍 NO.1  - 양규 장군

 

우리 역사에도 이런 인물이? 고려 무쌍 NO.1 이라할 수 있는 장군 - 척준경이 아닙니다. 고려의 백

2차 고려 거란 전쟁의 영웅 양규 장군 2차 고려와 요나라 전투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장수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양규 장군입니다. 고려 최상의 무장하면 먼저 떠오르는 인물인 척준경. 소드마

blogdaitso.com

 

김숙흥 장군과 양규 장군의 분전은 고려 백성들을 구했고, 거란(요나라)에 대한 저항의식도 심어준 것입니다.

 

이후 김숙흥 장군은 장군직으로 추증되었고, 고려 현종은 그의 어머니 이씨에게는 매년 쌀 50섬을 지급하라고 명합니다.

 

김숙흥 장군은 1019년 공신녹권이 내려졌고, 1024삼한후벽상공신에 녹권 되었으며 고려 문종이 즉위하자 그 공을 기리며 김숙흥 장군의 초상화를 공신각에 그려 넣도록 하였습니다.

 

아들에게 강인한 무사도를 가르친 어머니 이씨. 그녀의 이런 교육 덕분에, 여요전쟁의 영웅 김숙흥 장군이 있을 수 있었으며, 고려의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사 최초의 쿠데타를 성공시킨 인물 - 쿠데타에 성공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만 거란의 침공

고려사 최초의 쿠데타를 성공하다 - 강조 고려사 최초의 쿠데타를 일으키고 성공하여 권력을 잡은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강조입니다. 강조는 황해도 출신으로 신천 지방의 호족 출신이며

blogdaitso.com

 

세계 최강 몽골군에 13명의 미니 기병대로 돌격을 감행한 고려의 장군

13인의 미니 기병대로 몽골군에 돌격한 고려 무쌍 김경손 장군 고려시대에는 외침이 많았고, 그리인해 전투도 많았습니다. 이런 전쟁속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이번에 소개

blogdaitso.com

 

반응형
교차형 무한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