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로 한나라의 왕이 된 궁예
태조 왕건 드라마에서 김영철씨가 열연을 했던 궁예.
궁예 = 김영철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겁니다.
한쪽 시력을 잃어 안대를 찬 모습에, "누구인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 관심법 등으로 유명한 궁예.
워낙 다양한 짤까지 보유하고 있는 김영철씨가 연기했던 궁예.
그 궁예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궁예는 후삼국 시대의 한축을 담당했던 후고구려의 처음이자 마지막 왕입니다.
궁예는 신라 진골 귀족 출신으로 보이며, 신라 47대 헌안왕 또는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는 말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신라 왕실 출신으로 성은 김씨 입니다.
궁예는 태어날때 지붕 위에 이상한 빛이 서린데다 불길한 날짜에 태어나 장차 나라에 이롭지 못할 듯하니 기르지 않는 것이 좋다하여 죽이라 명하는데, 명을 받은 이가 차마 죽이지 못했고, 유모가 아이를 몰래 구하려다 실수로 한쪽 눈을 찔러 애꾸눈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궁예는 10살에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지만 그는 일개 승려로 살아갈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성인이 되면서부터 남다른 야망을 드러낸 궁예는 절을 나와 신라의 호족 가운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양길의 부하로 들어가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궁예의 비범함을 알아본 양길도 궁예에게 군사를 주어 동쪽으로 신라의 영토를 공략하게 하였습니다.
궁예는 잇따른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면서 승승장구 했고, 절문을 나선 지 3년 만인 894년 강릉을 거점으로 삼아 무려 3천5백 명 이상의 대군을 이끌고 장군으로 추대가 됩니다.
'삼국사기'에는 ‘사졸과 함께 고생하며, 주거나 빼앗는 일에 이르기까지도 공평무사하였다.’ 라고 궁예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궁예는 세력이 커지자 태백산맥을 넘어 철원으로 그 거점을 옮겼으며 송악(개성)의 유력 호족인 왕건이라는 출중한 부하를 얻습니다.
그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불안해진 양길은 궁예를 공격하려 하는데요. 이를 알게 된 궁예는 먼저 양길을 공격했고, 그를 제거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901년 자신을 따르는 세력을 모아 고구려를 계승한다며 '후고구려'를 세우고 임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견훤이 후백제를 세운지 1년 뒤였던 시점이었습니다. 궁예는 아무것도 없는 흙수저 상태에서 한 나라의 왕이 된 것입니다.
왕이 된 궁예는 독자적인 국호와 연호를 선포함으로써 자주 외교의 의지를 드러냈는데요.
후고구려를 세우고 5년 뒤 도읍을 개성에서 철원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태봉'으로 나라 이름을 바꿉니다.
궁예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꿨고, 도성을 낮은 평지에 만든 것도 백성들과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신라의 골품제의 모순을 극복하려 노력했는데요. 그로인해 신분으로 받는 관직이 아닌 실력으로 받는 관직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고 합니다.
궁예는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하며 불교의 권위를 빌렸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관심법을 쓸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는 자신의 정적을 제거해 반란을 막으려는 수단으로 사용이 되었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속마음을 읽었다며 부인과 아들들은 물론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들을 너무나 많이 그리고 잔혹하게 죽여버립니다.
그로인해 백성들과 신하들은 궁예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엉뚱한 관심법으로 언제 파리 목숨 취급을 할지 모르다보니 살 길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불경 20권을 지으니 석총이라는 승려가 궁예에게 요사스럽고 괴이한 이야기라 독설을 퍼붓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에 궁예는 승려 석총을 철퇴로 쳐 죽이는데요.
이로인해 자신의 주요한 배후세력인 승려들이 등을 돌리고 말았으며, 궁예의 포악하고 독단적인 행동은 호족과 신하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918년 6월에 왕건을 비롯한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과 같은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켜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들은 이후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당한 궁예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고려사>에는 그가 평복 차림으로 도망갔다가 주민들에게 살해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심을 잃고 폭정을 일삼아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 궁예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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