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과 흥청망청
돈이나 물건을 마구 쓰는 모양을 뜻하는 흥청망청.
흥청망청이라는 말은 조선시대 폭군의 대명사인 연산군 때 생긴 말입니다.
연산군은 향연을 베풀기 위해 기녀를 체계적으로 관리했으며 조선 팔도에 채홍사를 파견해 각 지방의 아름다운 처녀를 궁궐로 뽑아 오게합니다.
뽑아온 여인들을 기생으로 삼았으며, 이들을 '운평' 이라 불렀으며 그 숫자가 만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런 운평중에서 한번 더 선발 과정을 거쳐 특별히 뽑힌 기생들은 궁궐에서 살게 되는데요.
이들이 바로 '흥청'입니다.
운평 중 흥청을 선발하는 기준은 3가지가 있는데 아름다운 미모와 노래 및 춤 실력이 뛰어나야하며, 마지막으로 성격이 활달해야 했는데요.
하지만 이 세가지 조건을 다 만족하는 인원을 뽑기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습니다.
폭군 연산군은 늘 흥청의 정원을 채울것을 독촉했습니다.
연산군의 성화에 못이겨 수준에 미달이 되는 흥청을 잘못 뽑으면 그 뽑은 자를 처벌하기까지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처음에는 관비나 몸종에서 흥청을 뽑던 것이 나중에는 양갓집 부녀자까지 확대되어 강제로 흥청이 되는 경우도 다반사였습니다.
이렇게 뽑힌 흥청은 다시 3단계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그 기준은 연산군의 사랑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에 따라 정해졌습니다.
- 천과흥청 : 임금의 사랑을 받은 가장 높은 흥청
- 반천과흥청 : 천과흥청과 지과흥청 사이 중간 흥청
- 지과흥청 : 임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가장낮은 흥청
위와 같은 단계가 있어던 것입니다.
천과흥청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연산군을 치마폭에 감싸고 국정농단을 일삼았던 장녹수가 있습니다.
👉👉👉얼굴도 예쁘지 않았는데, 연산군의 여자가 된 장녹수
흥청이 되면 궁궐에서 사는 것 뿐 아니라 다양한 혜택이 있었습니다.
녹봉을 지급하고, 몸종을 지원해줬으며, 그 가족에게는 집과 땅을 지원해줬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문제가 있었으니. 흥청이 사용하는 물품은 그 흥청의 출신지에서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흥청이 나온 곳의 백성들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도망치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한편 한번 흥청이 되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흥청에 선발되었다 하더라도 노래나 춤 실력이 떨어지거나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면 곧바로 운평으로 강등될 수 있었습니다.
연산군은 이렇게 가려 뽑은 흥청과 함께 나라가 기우는 줄도 모르고 먹고 마시고 즐겼는데요.
경회루 연못 위에서 초대형 배를 타고 흥청들의 노래를 듣고 춤을 보면서 연회를 자주 열었습니다.
이때 연산군은 이것이 곧 태평성대라 여겼다고 하니,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지만...할말을 잃게 만드는 그의 생각입니다.
연산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밤낮으로 향락을 즐겼으며, 음탕한 생활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폭정과 사치로 인해 조선 최초의 반정인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은 왕자리에서 쫓겨나며 몰락하게 됩니다.
흥청들과 신나게 놀아나다 망했다하여 백성들 사이에서 생겨난 말이 바로 '흥청망청' 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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