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양력) 5월 22일. 조선과 미국간 미수호통상조약에 의해 미국은 특명 전권 대사 루시어스 푸트를 파견했습니다. 이에 조선에서 역시 공사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조선은 공사를 보낼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푸트의 건의로 답례차 외교 사절을 파견하기로 했는데, 그들이 보빙사이며, 전권 대신 민영익, 부대신 홍영식, 종사관 서광범 3명이 공식으로 벼슬을 받은 외교 사절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그들을 수행하는 수행원으로 수원 유길준, 최경석, 변수, 고영철, 현흥택 과 통역에 우리탕까지 하여 8명으로 구성이 되었습니다.
보빙사의 주요 인물인 홍영식, 서광범이 갑신정변에 참여했다 실패 후 역적으로 단죄되어 기록말살형을 당해 오늘날 한국 측에 남아있는 보빙사의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미국 내 일정은 신문 기자들이 따라다니면서 기록하여 오늘날까지 당시의 일정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보빙사는 1882년 7월 15일 출항하여 일본을 거쳐 8월 15일 샌프란시스코로 출항하여 9월 2일 미국에 도착합니다.
이들은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견학도 하고 차관 요청도 하고 기술 전수 요청도 하고 박람회 개최 협조 요청도 하는 등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10월 12일 귀국 인사차 백악관에 방문. 이때 아서 대통령은 군함 한 척을 내주며 조선까지 타고 갈 것을 권유합니다.
민영익, 서광범, 변수는 이 군함을 타고 유럽 등으로 건너가 각국을 순방한 후 조선으로 갈 계획을 세웁니다. 이들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을 보고 수에즈 운하로 지나가는 도중 이집트를 잠시 순방합니다.
조선인으로선 처음으로 피라미드도 방문한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안내해주는 선교사 측에서 당시에 유행했던 피라미드 등반 및 탐사를 보빙사 일행들에게 알려주고 그렇게 해보라고 했는데요.
하지만 당시 보빙사 관원들은 "천한 백정의 무덤도 함부로 밟아서는 안 되는 것이 예법이거늘 하물며 다른 나라의 국왕의 무덤을 함부로 밟는다는 것은 어느 나라의 예법이냐"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동방예의지국, 유교를 숭상하는 나라인 조선이라 피라미드도 함부로 밟고 올라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빙사 일행은 이후 인도, 싱가포르, 일본 등을 거쳐 조선으로 1884년 5월 귀국했습니다. 조선인 최초로 거의 세계일주를 한 셈입니다.
저도 아직 못해본 세계일주를 1883~1884년에 했다니, 신기하기도 하지만, 조선이라는 우물에 갖혀있다 넓은 세상를 보고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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