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생환. 김구 선생 '남목청 사건'
독립운동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백범 김구 선생.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며,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분입니다. 그런 김구 선생이다보니 일제는 엄청난 양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 했습니다.
늘 순간 순간이 목숨이 위태로웠던 김구 선생. 그런 김구 선생의 가슴에 선명한 총알 자국이 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이 총알은 남목청 사건때 밀정 이운환이 쏜 것입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애국지사들은 중국의 승전이 한국의 독립을 앞당길 수 있다고 믿고, 항일운동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38년 5월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창사 조선혁명당 본부에서 한국국민당의 김구·조완구, 조선혁명당의 이청천·현익철·유동열, 재건 한국독립당의 조소앙·홍진 3당 대표가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에 대한 회의를 합니다.
남목청에서 회의를 하던 중, 회의장에 조선혁명당 간부 이운환이 난입해 권총을 난사합니다.
제1발에 김구 선생이, 제2발은 현익철이, 제3발은 유동열이, 제4발에 이청천이 맞았고, 김구 선생과 유동열은 중상을, 이청천은 경상을 입었습니다.
이중 현익철의 부상이 가장 심각했는데, 그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절명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남목청 사건' 입니다.
부상당한 김구 선생을 보고 의사들은 살아날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응급조치도 하지 않은채 문간방에 방치했습니다.
얼마나 상태가 안좋았으면 김구 선생의 장남 김인과 안공근에게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보까지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4시간이 지나도 김구 선생이 살아 있자, 그때서야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치료를 받고 김구 선생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사건 직후 이운환은 중국 정부에 긴급 체포되었고 공범인 박창세, 강창제 등도 구금되었지만, 일본군의 공격에 밀려다니던 중국은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고, 이들을 모두 풀어줍니다.
해당 사진을 보면 당당한 자세로 침대에 앉아 있는 김구 선생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심장 아래 쪽에 선명한 총상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김구 선생은 중국 창사 상아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고 약 한달 뒤 의료진과 이 사진을 찍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당시 중국의 장제스는 매일 사람을 보내서 김구 선생의 병세를 물었으며, 병원 비용 전액을 부담했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술 한잔하고 있는데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 병원이었다.’
의사들까지 포기했을만큼 심각한 총상을 당한 김구 선생.
조국 독립을 이루겠다는 그의 열망이 꺼져가는 생명을, 모두가 포기한 생명을 붙잡고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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