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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다구

 

3대째 고려의 매국노 홍다구

 

할아버지 홍대순, 아버지 홍복원, 아들 홍다구 까지 3대째 고려에 해악을 끼치고 원나라에 매국을 했던 집안이 있었습니다.

 

앞서 홍복원을 다루었던 포스팅이 있습니다.

 

👉👉👉고려의 이완용. 주인을 무는 개, 고려의 역신이자 매국노 홍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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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아버지 홍복원 못지않았던,아버지를 따라 고려에 해를 끼치고 사리사욕을 채웠던 아들 홍복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홍다구

 

홍복원의 본관은 남양이며 본명은 준기, 몽골명 찰구이 입니다.

 

할아버지 홍대순은 1218년 몽골군이 거란족의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강동성을 침범하였을 때 항복했으며, 아버지 홍복원은 몽골이 1차 고려를 침입할 때 고려를 배신하고 원나라에 빌붙었으며, 원이 고려를 침공할 때마다 길잡이가 되었던 인물입니다.

 

 

홍복원은 필현보와 함께 고려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최이의 군사에 의해 필현보가 죽고, 반란군이 진압되자 홍복원은 가족을 데리고 원나라로 도망쳤습니다.

 

홍다구는 몽고에서 출생하고 성장했으며, 어려서부터 군에 들어가 용맹을 떨쳤다 합니다.

 

이때 원나라 세조의 총애를 받아 세조가 그를 홍다구라 불렀다고 합니다.

 

 

홍복원은 원나라에 머물면서 원이 고려를 쳐들어갈 것을 종용했으며, 인질로 잡혀온 고려의 왕족 영녕공 왕준을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합니다.

 

그러다 둘 사이가 틀어져 1258년 홍복원은 영녕공 왕준을 업신여기고 모욕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때 영녕공 왕준의 아내가 원나라 황족이다 보니 그녀는 홍복원의 만행을 몽골 조정에 고했고, 황족을 모욕한 혐의로 홍복원은 처참하게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이를 본 홍다구는 이때부터 고려에 대해 적개심을 품게 됩니다.

 

그로부터 2년 뒤 홍다구는 원나라 전쟁에 종군하여 용맹을 떨쳤고 그 공으로 권세를 잡게 됩니다.

 

고려에 적개심을 품었던 홍다구.

 

1263년 영녕공 왕준을 참소해 왕준이 원에서 가지고 있던 고려 군민에 대한 관령권을 탈취해옵니다.

 

 

1269년 고려 원종이 개경 천도를 반대 하는 임연을 제거하기 위해 원나라에 군사를 요청하자 다음 해에 두련가 장군을 따라 3,000명의 귀부군을 이끌고 처음 고려에 옵니다.

 

1271년 재차 고려에 들어와 봉주(황해도 봉산군)에 에 둔전총관부를 설치하고 주둔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고려에 있던 부원세력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에 삼별초의 항쟁이 일어나자 고려의 장수 김방경과 함께 진도를 거쳐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삼별초군을 토벌합니다.

 

홍다구

 

이때 삼별초에 의해 왕으로 추대된 영녕공 왕준의 형인 고려 왕족 승화후 왕온을 잡아 직접 칼로 죽인 이가 홍다구였습니다.

 

1274년 원나라는 섬나라 일본을 정벌할 계획을 세우고 소용대장군 감독조선관군민총관에 홍다구를 임명합니다.

 

홍다구는 배를 건조하는 책임을 맡았고, 고려 백성들을 혹독하게 다루며 빨리 배를 만들 것을 독촉합니다.

 

이에 고려인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는데요. 그 강도가 얼마나 심했으면 고려 백성 모두가 죽일 놈이라 원망했다고 합니다.

 

홍다구의 악랄한 독촉으로 불과 4개월 만에 군함 900척이 건조되었습니다.

 

1274년 음력 10 3일 여몽연합군은 경상도 합포를 출발해 일본 원정에 들어갑니다.

 

 

이후 쓰시마섬과 이키섬을 공격했지만 음력 10 20일과 21일 사이 새벽 엄청난 폭풍이 몰아쳐 900척의 군함중 200여척만 남고, 나머지는 모조리 침몰하는 일이 일어났고, 원정군은 철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원나라는 일본 정벌을 포기하지 않았는데요.

 

1277년 진국상장군 정동도원수 정동도원수에 홍다구를 임명하고 고려에 주둔하며 일본 정벌을 대비하게 합니다.

 

김방경 장군

 

1278년 위득유가 김방경 장군이 왕을 죽이려 한다고 무고하여 김방경 장군이 투옥되자, 홍다구는 가혹하게 김방경을 고문하고 고의로 사건을 확대시켜 고려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려했지만 끝내 김방경이 허위 자백을 하지 않자 풀어주게 됩니다.

 

 

이후 원 황제의 소환으로 원으로 돌아갔다가 12812차 일본 원정 때 우승 실도와 4만 군사를 이끌고 합포를 떠나 일본 원정에 들어갑니다.

 

 

1차 원정때처럼 초반에는 승기를 잡았던 원정군. 하지만 이번에도 태풍이 불어와 많은 군사를 잃고 원나라로 돌아갑니다.

 

이때 돌아간 홍다구는 다시 고려로 오지 못했는데요.

 

이후 홍다구는 원나라 내의 반란을 진압하며 공을 세웠고, 1290년에 병 때문에 사직한 후 다음해에 사망합니다.

 

3대에 걸쳐 고려와 악연이었던 홍다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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