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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이방과

 

조선의 제 2대 왕 정종

 

왕위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왕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조선의 왕이 있습니다.

 

이성계의 둘째 아들로 태조의 뒤를 이어 조선의 제 2대 왕이 되었으며, 재임 2년만에 보위를 동생 이방원에게 양위하며 상왕으로 물러났던 인물.

 

바로 정종 이방과 입니다.

 

이번에는 정종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인 정종의 자는 광원이며 초명은 방과 입니다.

 

그는 성품이 인자하고 용기와 지략이 뛰어나, 고려 때 아버지를 따라 북방의 전투에 참가하며 수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각종 드라마에서 이방과를 유약한 인물로 표현을 하지만, 실제는 무예가 출종하고 용맹했던 무인 스타일의 인물이었는데요.

 

이방과는 조선 개국 이후 영안군에 책봉됩니다.

 

 

태조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의안대군 이방석이 조선의 첫 세자로 책봉이 되면서 조선 개국에 가장 공이 많았던 정안군 이방원의 불만은 커졌습니다.

 

1398년 무인년 8 23, 이방원을 비롯한 신의왕후 한 씨 소생의 왕자들이 사병을 동원해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의 반대파 세력을 불의에 습격해서 살해하고 세자 이방석과 그의 동복형인 이방번을 죽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제1차 왕자의 난

 

이 사건을 1차 왕자의 난, 방원의 난 그리고 무인정사, 정도전의 난이라고 부릅니다.

 

이방원이 주도한 1차 왕자의 난이 성공하면서 다시 세자 책봉의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이방과는당초부터 대의를 주창하고 개국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업적은 모두 정안군의 공로인데 내가 어찌 세자가 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완강하게 거절했으나 정안군이 양보해 세자가 되었습니다.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한달 후인 1398 9월 태조 이성계는 둘째 아들방과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이렇게 이방과는 조선의 제 2대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동생 이방원의 양보로 왕이 된 정종.

 

그렇다보니 사실상의 권력은 방원에게 있었고, 정종시기의 정치는 대부분 이방원의 뜻에 따라 진행이 되었습니다.

 

1399, 골육상쟁 및 권력투쟁의 장이었던 한양의 지형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천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하급 관리가 상급 관리의 집을 방문하지 못하는 ‘분경 금지법을 제정했습니다.

 

또한 관인이 왕족과 외척들에게 의존하는 것을 금지, 권력을 가진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이후 14002차 왕자의 난이 수습된 뒤 정종은 동생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정종 이방과

 

원래 방원은 왕위를 이어받을 왕의 아우라고 해서, 세제로 책봉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방원이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세자에 책봉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세자의 자리에 오른 것 된 것입니다.

 

그리고 1400년 그 해에, 왕족 및 권력자들의 사병을 혁파하였으며 병권을 의흥삼군부에 집중시켰습니다.

 

또한 고려의 최고 의정 기관이었던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고치고 고려 시대에 왕의 출납과 군기, 그리고 숙위 등을 맡던 관아인 중추원을 삼군부로 고치면서 삼군부에 직을 둔 이들이 의정부에 합좌하지 못하도록 해 정무와 군정을 분리 시켰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들은 왕권 강화를 위한 것으로 모두 이방원의 영향력 하에 이뤄진 일이었습니다.

 

1399 3월에는 학문 연구기관인 집현전을 설치해, 장서와 경적의 강론을 담당하게 했으며 5월에는 태조 때 완성된 『향약 제생 집성방』을 편찬했습니다.

 

1400 6월에는 노비소송 처리를 위한 임시 관서인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해 노비를 관리했습니다.

 

 

정종은 재위 시절 정무보다는 격구 등의 오락에 탐닉하며 생활했습니다.

 

이는 정종 나름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의 이런 행동은 이방원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었고, 이 때문에 정종은 방원과의 우애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태종 이방원

 

1400 11, 정종은 마침내, 아우 이방원에게 왕좌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습니다.

 

상왕으로 물러나는 것은 그와 그의 정비인 정안 왕후가 간절히 바란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정종의 어쩔 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이후 정종은 인덕궁에 거주하면서 사냥과 격구, 연회, 온천여행 등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1419년 세종 원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능은 개풍군의 후릉 입니다.

 

 

정종은 사망 후 묘호도 없이 공정대왕으로 불리다가 사후 무려 260년이 넘게 지난 1681(숙종 7)에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정종의 뜻은 태조의 업적을 계승하여 정국을 잘 다스렸으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크게 염려하였다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자신은 크게 왕위에 욕심이 없었지만, 왕이 되었던 정종 이방과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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