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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

 

고려인으로 원나라 환관이 된 고용보

 

2013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기황후.

 

거기에서 배우 이원종 씨가 연기했던 독만태감. 드라마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기황후를 도와주는 착한 인물로 나오는데요.

 

고용보

 

독만태감으로 등장했던 인물이 실제 존재했었으니 그가 바로 고용보입니다.

 

고용보는 드라마와 마찬가지고 고려인이지만 원나라에 가서 환관이 된 인물인데요.

 

하지만 드라마 속 캐릭터처럼 선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환관으로 출세한 이후 고려를 핍박하고 횡포를 부렸던 고려 입장에서 봤을 때는 반역자였습니다.

 

그 최후 역시 좋지는 않았는데요.

 

이번에는 드라마에도 등장을 했던 고려인 원나라 환관 고용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용보는 원래 천한 신분으로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 출신이었습니다.

 

그 당시 원나라는 고려에 매와 인삼 등 다양한 공물을 징발해갔고, 거기에 더해 성불구자도 데리고 가서 환관으로 만들어 부려먹었는데요.

 

이렇게 환관이 된 고려 청년들은 각종 잡일에 동원되었지만 이따금씩 황제의 총애를 받아 관직을 하사 받고 권력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고려에 계속 있었으면 천대를 받는 삶의 연속이었을 고용보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대략 1310년 정도에 원나라로 넘어가 환관이 되었습니다.

 

 

1333년 고용보는 훗날 기황후가 되는 기자오의 딸 기 씨를 원나라 조정에 추천하여 원 혜종의 궁녀로 들여보내면서 인생 역전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1340년 기씨가 원나라 제 2황후가 되면서부터 고용보는 기황후를 등에 업고 황제로부터 자정원사라는 관직에 임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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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원은 기황후의 재정을 담당하는 기구였으며 그곳의 책임자가 되며 기황후의 최측근 심복이 됩니다.

 

 

기황후라는 든든한 배경을 얻게 된 고용보는 이후 원나라에서 승승장구하였고,기황후가 원 조정에서 힘이 커지는 만큼

그 역시 같이 영향력이 커져만 갔습니다.

 

고용보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고려의 충혜왕이 미천한 신분인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광완산군이라는 직위를 줄 정도였습니다.

 

👉👉👉한국사 최악의 폐륜왕  충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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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혜종의 명을 받아 기황후의 모친인 이 씨를 맞이하기 위해 1342년 고용보는 원나라의 사신 자격으로 고국인 고려의 땅을 밟게 됩니다.

 

고려에서 미천한 일을 하며 하대 받고 살았으며, 남자로서 굴욕인 환관이 되어 고생하다가 출세를 하게 되어서인지, 자신의 굴욕감을 만회하고 성취감을 가지려는 보상 심리가 작용한 것인지, 고려에 온 고용보는 고려 조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전횡을 부렸으며 심지어 고려의 왕인 충혜왕에게 매를 제대로 보내지 않는다며 꾸짖기 까지 합니다.

 

거기에 더해 부원배의 대표 주자이자, 간신의 대명사였던 기황후의 오라비 기철과도 뜻을 같이하면서 그의 영향력은 절정에 달합니다.

 

충혜왕

 

당시 왕이었던 충혜왕은 아버지의 후궁까지 겁탈하고,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며, 사치와 향락에 빠져있던 희대의 폭군이었습니다.

 

그런 충혜왕의 기행이 원나라 조정에 알려지자 원 황실은 충혜왕을 폐위하고 원나라 압송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때 고용보는 황제의 명령으로 충혜왕에게 의복과 술을 하사한다는 명목으로 다시 고려에 옵니다.

 

하지만 눈치 빠른 충혜왕은 낌새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병을 핑계로 사신단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고용보는  황제께서 늘 고려 왕이 공손하지 못하다고 하시는데, 만약 영접하러 나가지 않으시면 황제의 의심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라고 충혜왕에게 경고를 보냈고 이에 어쩔 수 없이 충혜왕이 정동행성으로 사신을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충혜왕을 원 나라로 압송하기 위한 고용보의 계략으로 일전에 사신으로 파견 와있던 도치 등이 충혜왕을 발로 차는 등 구타하고 포박해버립니다.

 

이때 충혜왕은 고용보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는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충혜왕을 꾸짖었다 합니다.

 

원 사신 도치는 충혜왕을 압송해가면서 고려의 내정을 고용보에게 전담하게 합니다.

 

전권을 받은 고용보는 충혜왕의 신하들을 투옥시키고 원나라로 압송된 충혜왕을 헐뜯어 그를 악양현으로 유배 보낸 뒤 사실상 죽음에 이르게 했고, 1344년 당시 8살의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충혜왕의 아들 충목왕을 원 혜종에게 입조 시켜 그를 고려 왕으로 옹립하는데 일조합니다.

 

이렇게 되자 환관 고용보의 권세는 하늘을 찔렀고, 그를 중심으로 원의 부원배들이 득세하면서 고려를 좀먹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런 그의 권세도 길게 가지 않았는데요.

 

 

고용보의 전횡을 보다 못한 나머지 원나라의 어사대에서 그를 탄핵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원나라에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고용보는 금강산으로 유배를 오게 되는데요.

 

그러나 고려 충목왕이 고용보를 불러들이자 전횡을 일삼아 자신이 유배 온 것도 모르고 기황우의 오빠 기철 일당들과 함께 여전히 횡포를 부립니다.

 

공민왕

 

1352년 공민왕이 즉위한 후, 조일신이 기철, 고용보 등 친원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난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조일신의 난은 실패로 끝이 납니다.

 

이때 고용보는 난을 피해 숨어 살아야 했으며 그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 지냈습니다.

 

자신의 친형인 충혜왕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고용보에게 복수를 하려고 이를 갈았던 공민왕은 사람을 시켜 그를 찾았고 1362, 10년 만에 해인사에 숨어 살던 고용보를 찾아내어 마침내 처형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에서 천대받는 삶을 살기 싫어 원나라로 건너가 환관이 되어 권력의 중심에 섰던 고용보. 그 힘으로 전횡을 일삼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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