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족을 물리친 고구려의 영웅 부분노 장군
건국 초기 외세인 선비족을 물리치고, 고구려가 성장하는데 발판을 마련한 장수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부분노 장군입니다.
기록이 많지 않아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그 출신의 배경은 어떠한지를 알 수 없습니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대 부터 활약한 기록이 있으며, 유리명왕 대 까지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동명왕편의 기록에 의하면 부분노는 고구려 건국초기부터 동명성왕(추모왕)의 최측근으로 활약을 했다고 되어있습니다.
부분노는 기원전 32년인 동명성왕 6년, 오이와 함께 왕명을 받들어 개마고원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이 되는 행인국을 공격해 그 땅을 빼앗고 성읍으로 삼았습니다.
부분노의 활약상은 유리왕때 계책을 사용해 선비족을 무찌른 것으로 유명합니다.
선비족은 남만주와 내몽골, 다싱안링 산맥 지역에 분포했던 동호 또는 튀르크계 민족으로 유목 및 수렵생활을 했던 민족입니다.
이후 기원전 9년(유리왕 10년)에 선비족이 고구려를 침입해왔습니다.
그들은 고구려에게 큰 위협이 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선비족을 정벌하려고 했지만 그들이 사는 땅이 험하고 거칠기로 유명해 쉽지가 않았습니다.
유리왕과 신하들이 선비족 공략을 두고 고심하던 중에 부분노는 "선비는 험하고 견고한 나라이며 사람들이 용감하지만 어리석으므로 꾀로 굴복시킬 수 있다."라 말하며 한가지 계책을 내었습니다.
부분노는 선비족에게 거짓 배반자를 보내서 고구려의 병사들이 약하고 겁이 많다고 속인 후에 왕이 약한 군사를 끌고 선비족의 성 앞에 나섰다가 달아나면 선비족이 고구려군을 우습게 알고 뒤를 쫓을 테니 그 틈을 타서 정예 병력으로 기습공격을 하면 승산이 있다고 자신의 계책을 말했습니다.
이에 유리왕은 부분노가 말한 계책대로 실행을 합니다.
먼저 거짓으로 첩자를 선비족에 가서 살게 하면서 고구려가 선비족을 겁내고 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립니다.
그러자 선비족은 고구려에 대해 방심을 하게 되었고, 방비도 소홀히 하게 됩니다.
어느정도 때가 되었을 무렵 유리왕은 직접 기병을 이끌고 선비족을 공격하기 위해 출전합니다.
군대를 이끌고 유리왕이 선비족 성 앞에 도착하자 고구려의 군대를 우습게 알았던 선비족은 성을 굳게 지키지 않고 오히려 성문을 열고 유리왕의 군대를 공격해왔고, 고구려 군사들은 싸움에 지는 척하면서 후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선비족 군사들은 성에서 멀리까지 나와 고구려군을 추격하게 됩니다.
이때 산속에 매복해있던 부분노 장군이 열려있던 선비족의 성문 안으로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 성을 점령해버립니다.
그렇게 되자 선비족은 앞, 뒤에서 고구려 군사들의 공격을 받는 형국이 되었고, 어쩔수 없이 고구려에 항복하고 속민이 되었습니다.
부분노의 계책으로 인해 험준한 지형에 있던 선비족을 쉽게 공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공로를 높이 산 유리왕은 부분노에게 식읍을 하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부분노는 이 모든 공이 유리왕에게 있다며, 자신의 군주에게 그 공을 돌리고 받지 않았습니다.
선비족을 굴복시킨 부분노 장군은 공을 세우고도 자신을 낮출줄 아는 미덕까지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이에 유리왕은 식읍을 대신해 부분노에게 황금 30근과 좋은 말 10필을 하사하였다고 합니다.
부분노의 활약으로 고구려는 선비족이라는 외적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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