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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목사 서예원

 

모쿠소 김시민 장군으로 착각해 목이 잘린 진주 목사 서예원

 

기세 등등했던 일본군이 전투를 치른 후 모쿠소라 부르며 두려워했던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 장군입니다.

 

일본군은 2만을 조선군과 민을 합쳐  3800명으로 막아낸 1차 진주성 전투.

 

김시민 장군

 

김시민 장군에게 대패한 일본군은 그를 '모쿠소' 라 부르며 두려워했습니다.

 

 

김시민장군을 모쿠소라 부른 이유는 진주목사의 목사를 모쿠소라 한 것인데 조선에 목사는 20여명이 있었지만 모쿠소는 김시민 장군만을 칭하는 것이었을 정도로 일본군의 공포의 대상이 김시민 장군이었습니다.

 

👉👉👉모쿠소라 불리며 임진왜란 일본군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김시민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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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투 마지막날 김시민 장군은 이마에 적의 탄환을 맞아 사경을 헤매다 3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합니다.

 

진주대첩에서 패배 소식을 접한 히데요시의 분노는 컸습니다.

 

 

이에 일본군은 1차 진주성 전투의 원한을 갚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노도 피하면서 조명 연합군에 심리적 타격을 입혀 강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1593년 음력 6 1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진주성을 공격해옵니다.

 

이때 진주목사는 김시민 장군을 대신해 서예원이 맡고 있었습니다.

 

서예원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1573년 무과에 급제한 인물입니다.

 

힘은 세지만 어리석고 겁이 많아서 무장으로서 별다른 전공을 세우지는 못하였는데요.

 

서예원

 

1591년 김해부사로 부임했고, 이듬해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직후 일본군이 김해성을 공격했을 때 서예원은 초계군수 이유겸과 함께 성을 수비해 적군의 3차례 공격을 막아냈지만 적군이 4번째 공격을 가할 때 이유겸이 달아나버리자 그 역시 성을 버리고 탈출해버립니다.

 

그로인해 서예원은 패전의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 처분을 받아 의병장 김면 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는 김면 휘하에서 지례현 전투와 장곡역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그 공으로 김해부사에 다시 복직합니다.

 

1593 4월 경상도 초유사 학봉 김성일의 추천으로 진주목사에 부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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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10만의 대병력으로 진주를 공격해오자 도원수 권율과 홍의 장군 곽재우는 진주성에 들어가는 것을 피했습니다.

 

하지만 경상우병사 최경회, 충청병사 황진 등 일부 조선군과 김천일, 고종후 등의 의병장들은 그들의 군대를 이끌고 진주성에 합류했습니다.

 

10만 대군에 맞서는 진주성 병력은 4000~6000명 정도였으며, 성 안에는 백성 6만 명이 있었습니다.

 

 

6 22일 일본군 본대는 진주성 앞에 도착한 후 본격적으로 진주성을 공격해왔고 조선군은 겨우겨우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6 28일에 충청병사 황진이 숨어있던 적군의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전세는 급격하게 나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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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 29일 정오 무렵 진주성은 일본군에 함락이 되고 맙니다.

 

조선 측 기록에 의하면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죽은 자가 6만이었습니다.

 

 

 

일본 측에서는 이것이 과장된 기록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사료에서 진주성에 인구가 3만이고 그중 강으로 도망친 수백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전사 조선역에서는 일본군이 취한 수급만 2만이 넘고 그 외에 엄청난 수의 포로를 포획했으며 익사한 자의 수도 헤아릴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광기에 물든 일본군은 진주성 내 가축까지 몰살시킬 정도였으며,조선군은 장수급 가운데서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진주 목사 서예원 역시 사망하였는데요.

 

그의 사망을 두고 다양한 설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또 비겁하게 숨어 있다가 잡혀서 목이 잘렸다고 하고, 어떤 이는 싸우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남강에 뛰어들어 탈출하다가 잡혀 죽었다 하기도 했으며, 적에게 돌진해서 싸우다가 죽었다고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서예원은 진주성에서 사망한 것이 맞으며, 그의 가족 역시 다 사망했다는 점입니다.

 

진주성이 함락되고 일본군들은 진주목사 서예원의 목을 잘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냈습니다.

 

1차 진주성 전투인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 장군이 서예원이라 착각을 해서였습니다

 

그들은 김시민 장군이 사망한 것을 몰랐고, 그를 대신해 진주 목사로 있던 서예원을 모쿠소로 알았던 것이었습니다.

 

목이 잘려 일본에 까지 보내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서예원은 임진왜란이 종식된 후 선무원종 1 공신에 추록되었고 병조참의로 추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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