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한 무수리 신분에서 왕의 친모가 된 숙빈 최씨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자 제21대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
그녀의 본관은 해주로 영의정에 추증된 최효원의 딸입니다.
7세 때 무수리로 궁에 들어왔다는 설과 1681년(숙종 7) 인현왕후가 숙종의 계비로 간택되었을 때, 12세의 나이로 인현왕후를 따라 궁에 들어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보편적으로는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인현왕후를 섬기며 궁궐생활을 하였으나,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가 폐출되고 희빈장씨가 왕비가 되자 모진 구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숙종과의 사이에서 아들 영수를 임신하여 1693년(숙종 19) 내명부 품계중 종4품인 숙원이 됩니다.
같은해 아들 영수를 낳았지만 영수는 2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64년 갑술환국으로 인현왕후가 복위된 후 종2품 숙위가 되었으며 연잉군 이금(훗날 영조)를 낳습니다.
1699년에 단종 복위를 기념해 품계가 올라 정1품 숙빈으로 책봉이 됩니다.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와 친분이 두터웠고, 희빈 장씨와는 사이가 나빴습니다.
후궁으로 강등이 된 희빈 장씨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들인 세자 역시 후궁의 아들로 바뀌었기에, 연잉군을 낳은 숙빈 장씨와는 관계가 좋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현왕후가 죽자 숙빈 최씨는 희빈 장씨의 저주에 의해 인현왕후가 죽은것이라 숙종에게 무고를 하였고, 그로 인해 희빈 장씨는 자진하라는 명을 받고 생을 마감하는데요.
정말로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저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희빈 장씨를 무고해 죽음으로 몰고간 사람은 숙빈 최씨라는 것은 진실입니다.
숙빈 최씨 입장에서는 자신과 아들 연잉군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가 죽어 공석이 된 중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원치않았을 것입니다.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가 죽고난 후 숙빈 최씨는 윗전들을 성심성의껏 모셨으나, 숙종이 희빈장씨와 같은 일이 생길까 염려하여 궁녀에서 왕비로 오르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왕비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녀는 행실이나 행동을 조심히해 불필요한 의심을 사지 않으며 조용히 삶을 살다 1718년 49세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숙빈 최씨의 아들인 연잉군은 경종의 왕세제로 책봉되었으며, 이후 경종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왕으로 등극하는데, 이가 바로 조선의 제 21대 임금인 영조입니다.
무수리라는 비천한 신분에서 결국은 왕의 어머니가 된 숙빈 최씨.
결국 진정한 승리자는 아들을 왕으로 만든 숙빈 최씨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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