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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

 

내가 조선의 왕이다. 태조 이성계

 

조선의 제1대 왕이자 30여년 동안 전투를 치르면서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불패의 명장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싸울 수 있었던 여진족,홍건적,원나라군벌,왜구를 전부 다 격퇴시킨 영웅.

 

왕이 되지 않았다면 나라를 구한 영웅 중 한명이 되었을 조선의 태조 이성계.

 

 

이번에는 이성계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성계는 고려말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한줄기 희망과도 같았던 구국의 영웅이자,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게도 목숨까지 걸고 지키려 노력했던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 조선을 창업한 군주이기도 한 인물인데요.

 

 

다른 역대 조선 국왕들은 이름보다는 묘호가 유명하지만, 묘호인 태조보다 이름이 더 유명한 인물이 이성계 이기도 합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는 환조 이자춘으로, 아들이 조선 창업을 하는 기반을 재공해준 인물입니다.

 

이성계의 고조부 이안사부터 아버지 이자춘 때까지 원나라로부터 천호라는 지방관의 자리를 얻어 쌍성총관부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하며 힘을 키웠습니다.

 

이자춘

 

쌍성총관부는 원나라가 1258년 고려에 침입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차지한 후 설치한 통치 기구로 이성계는 고려의 중앙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니라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변방의 세력이었습니다.

 

고려의 중앙과는 거리가 먼, 그것도 고려의 관리도 아닌 원에 속해있던 이성계가 고려의 중앙 조정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계기는 공민왕의 반원 정책 덕택이었습니다.

 

중국의 원-명 교체기의 혼란한 국제 정세를 틈타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고자 했던 공민왕은 1356년 원의 간섭기에 잃어버렸던 땅,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유인우 장군에게 쌍성총관부 공격을 명하였고, 이때 내응하여 유인우 장군이 쌍성총관부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한 인물이 이자춘입니다.

 

당시 20대의 젊은 이성계도 아버지와 함께 원나라 세력을 몰아내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공민왕은 이자춘의 공을 높이 사 그에게 고려의 벼슬을 내렸고 그가 지병으로 사망하자 아들 이성계에게 이자춘에게 내렸던 관직을 내려 동북면을 총괄하게 합니다.

 

비록 함경도 변방의 세력이었지만 착실히 군사력을 키운 이성계 힘은 가볍게 볼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성계에게는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사병 조직인 가별초가 있었고, 동북면에서 키운 인맥과 경제력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또한 20대 청년 이성계는 뛰어난 무예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활을 잘 쏘아 신궁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천하의 명궁으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혼란의 시대였던 고려말, 잇따른 외적의 침입은 고려 조정으로서는 큰 골칫거리였지만, 청년 장수 이성계에게는 무장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1361년 독로강 만호 박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을 신호로 가별초라 불리는 가문 직속의 정예 사병들을 이끌고 요동에서 한반도 남부에 이르기까지 전투를 하였고, 패배란것을 모르는 불패의 영웅으로 최영과 함께 고려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아기발도

 

너무나 많은 전공중에서도 굵직굵직한 전공 몇가지만 살펴보면 그중에서도 1380년 내륙으로 진출한 아기발도가 이끄는 왜구의 대군을 크게 물리쳤으며, 적군 수장 아기발도를 활로 사살하였습니다.

 

이때의 전투가 황산대첩으로 이성계가 구국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영향을 준 전투였습니다.

 

또한 1382년 여진족 추장 호발도가 침공해오자 그의 의형제 이지란과 궤멸시켜버립니다.

 

이렇게 이성계는 고려 남쪽과 북쪽을 가리지 않고 20여 년간을 고려와 백성을 위해 전투를 치뤘습니다.

 

‘불패의 사나이’, ‘난세를 구원할 영웅이성계는 거듭되는 승전을 통해 고려 조정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 되었고, 벼슬길 또한 승승장구 하였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힘이있는자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듭니다.

 

이성계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그중에서도 국운이 다한 고려를 뒤엎고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생각을 품은 신진사대부들이 많았습니다.

 

 

이당시 국제정세는 주원장의 명나라가 중국 본토를 차지했고, 명나라는 원명 교체기의 혼란한 상황 동안 돌아보지 못한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 했습니다.

 

명은 이전의 원나라의 땅이었던 지역은 모두 명나라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원나라 쌍성총관부를 무너뜨리고 수복한 철령 이북의 땅을 다시 반납하라는 억지를 부렸습니다.

 

최영과 이성계

 

이러한 명의 요구에 우왕과 최영은 반발하였고, 명나라 국초의 불안한 정국을 틈타 요동 정벌전을 벌이자고 했습니다.

 

이러한 최영의 주장에 이성계는 4불가론을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4불가론을 살펴보면

  • 여름철 농번기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이 부적당하다.
  • 무덥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활의 아교가 녹아 무기로 쓰기 힘들다.
  • 요동을 공격하는 사이에 남쪽의 왜구가 침입할 우려가 있다.
  •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다.

라는 4가지의 이유를 들며 요동정벌을 반대했습니다.

 

4불가론 중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옳지 않다." 라는 부분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적 관점으로 요즘도 이성계를 비판할때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이같은 주장에도 최영과 우왕은 이성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결국 출전을 강행합니다.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의 명을 받아 우군도통사가, 조민수는 좌군도통사가 되어 군대를 이끌고 요동정벌 길에 올랐습니다.

 

원치 않았던 출정, 거기에 더해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들어가기 전 위화도에 주둔한 이성계는 큰 비를 만나 더이상 앞으로 전진할 수 없었습니다.

 

왕명에 따라 이대로 계속 전진해 물에 빠져 개죽음을 당할것인가, 아니면 왕명을 어기고 군대를 돌려 반역자가 될것인가의 기로에선 이성계, 결국 그는 좌군도통사 조민수를 설득해 회군을 하니 이 사건이 위화도회군 입니다.

 

고려의 수호신에서 왕명을 거역한 반역자의 신세가 된 이성계.

 

위화도 회군

 

그는 요동정벌을 위해 출정했던 대군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켜 개경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당시도 고려의 1인자는 최영이었지만, 요동정벌군에 대부분의 군사를 내어주었기에 적은 숫자로 이성계에게 맞섰지만 역부족이라 패하고 맙니다.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으로 쿠데타에 성공했고 자신의 최대 정적 최영을 제거했습니다.

 

이후 우왕을 왕위에서 내쫓고 고려 중앙 정계의 일인자가 됩니다.

 

 

이후 신진 사대부 중에서도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급진파와 뜻을 같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고려왕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안에서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려는 정몽주로 대표가 되는 온건파 신진사대부들과 반목을 하게됩니다.

 

 

이에 이성계의 5남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제거하게 되고, 이로인해 역성혁명의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정몽주 제거 4개월 뒤 마침내 이성계는 정도전 등의 추대를 받아 1392년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개경에서 공양왕에게 선위를 받았고, 이듬해인 1392년 국호를 조선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이성계가 왕위에 오를 당시의 나이는 58세로 조선 왕조에서 가장 많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74세에 사망하여 영조 다음으로 장수한 왕이었으며, 동시에 두 번째로 많은 나이(64)까지 재위한 왕이었습니다.

 

조선 왕 평균 수명이 47세 정도인데, 이성계는 47세에 동북면 도지휘사(관찰사 수준)의 지위였고, 의안대군 이방석을 얻었습니다.

 

거기다 타고난 무골이라 노인이 되어도 강건하기 그지 없어서 60대 중후반 쯤에 딸 숙신옹주 까지 얻었으니 정말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성계의 재위 기간은 1392년부터 1398년까지로 6년 동안 왕에 있었습니다.

 

변방의 무인에서 시작하여, 외적과 맞서 싸워서 두각을 나타낸 끝에 결국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이성계.

 

이런 위대한 영웅도 자식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지, 말년은 좋지 못했습니다.

 

형제끼리 죽고 죽이는 골육상잔의 비극을 자신의 눈으로 목격을 하고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고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났으니 말입니다.

 

이성계에게는 전 왕비 한씨 소생의 여섯 아들과 계비 강씨 소생의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방원은 한씨 소생의 다섯째 아들로, 정몽주 제거 등 조선 개국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며 야심가였습니다.

 

이방원은 조선의 첫 세자 자리는 자신의 것이라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내조덕에 이성계가 왕이 될 수 있다 생각했던 신덕왕후 강씨.

 

이성계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둔 강씨는 자신의 아들 중 하나가 다음 왕이 되기를 강력히 희망했고, 재상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꿈꾼 정도전 또한 야심가 이방원을 견제할 필요가 있어서 두 사람에 의해 조선의 첫 세자는 태조의 여덟번째 아들인 강씨 소생의 이방석이 됩니다.

 

1차 왕자의 난

 

자신의 자리라 생각했던 것을 아무 공도 없는 배다른 막내동생에게 빼앗긴 이방원은 때를 보며 힘을 키우다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제 1차 왕자의난으로 권력의 중심에 서다.

 

제 1차 왕자의난으로 권력의 중심에 서다. - 권력 앞에서는 피를 나눈 형제도 적이다

제 1차 왕자의난으로 권력의 중심에 선 태종 이방원 권력앞에서는 피를 나눈 형제도 필요없는 것일까요? 1398년 8월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왕자들간의 싸움. 바로 왕자의 난 입니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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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병을 이끌고 정도전,남은 등을 급습해 죽이고 이복동생 방석과 방번을 모두 살해합니다.

 

 

자신의 아들들이 다음 왕 자리를 두고 서로 죽이는 것을 본 이성계는 권력에 대해 환멸을 느꼈습니다.

 

이에  1398 9월에 왕위를 둘째 아들 방과에게 물려주니 이가 조선 2대 임금 정종입니다.

 

정종 즉위는 왕위 찬탈이라는 무도한 행위가 아닌 장자승계의 법칙을 바로잡고자 했다는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이방원의 임시방편 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2년 뒤 이방원은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넷째 형 방간마저 물리치고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넘겨받아 조선의 3번째 왕으로 등극하니 이가 바로 태종이다.

 

자식들의 골육상잔의 비극을 본 이성계는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경도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방원은 아버지를 모셔오기 위해 함경도로 차사를 보냈지만, 이성계는 이들을 죽여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함흥차사라는 말 들어보셨을텐데요. 심부름을 간 사람이 소식이 아주 없거나 또는 회답이 좀처럼 오지 않을 때를 이르는 말 함흥차사가 이때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후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다시 한양에 돌아와 태상왕의 자리에 있게 되었고, 그 뒤 절이나 온천을 유람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풍질(뇌졸중)에 걸려 앓다가 결국 1408년 음력 5 24일 창덕궁에서 74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한편의 영화와도 같은 삶을 살다간 태조 이성계

 

자산이 살아온 삶처럼 이성계의 마지막 또한 영화 같았습니다.

 

왕이 되기 위해 형제도 죽인 아들 이방원이 꼴도 보기 싫었던 이성계.

 

하지만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이방원이었다고 합니다.

 

실록에서는 '눈을 들어 왕(태종)을 다시 쳐다보더니 이에 승하했다'고 이성계의 최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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