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을 왕으로 만든 킹메이커 이숙번
조선 최초의 문과 급제자이자 문무를 겸비해 태종 이방원을 왕위에 오르게 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던 이숙번.
1,2 차 왕자의 난에 참여했고, 사극 등에서 갑옷을 입고 무인처럼 등장할때가 많아 이숙번이 무관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는 조선 최초의 식년시 문과에 병과 7위로 급제한 엄연한 문관입니다.
관직에 오른 후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의 주선으로 맨 처음에 이방원을 만났을 때 자신을 돕겠냐는 이방원에게 "그런 일쯤은 손바닥 뒤집는 일보다 쉬운 일이다."라면서 패기있는 대답을 해 이방원의 눈에 든 인물입니다.
1398년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을 도와 경복궁으로 병력을 출동시켜 정도전과 그 일당을 제거하는 공을 세우고 정사공신 2등에 봉해집니다.
이후 이성계의 4남 이방간이 일으킨 제2차 왕자의 난에도 이방원의 편에 서서 하륜과 함께 난을 진압하여 좌명공신이 되었습니다.
문신이지만 기마술과 궁술, 거기에 더해 창던지기 까지 무예에 능통하다 보니 무관직을 계속 역임했고, 함경도에서 안변부사 조사의가 난을 일으켰을 때도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난을 진압하는 등 태종 대에서 병조를 관장하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의 총애를 받은 이숙번은 안하무인격으로 권력을 휘두릅니다.
실록에 남아있는 한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태종실록에 의하면 풍수가 최양선의 상소로 한양도성의 기존 동, 서 통행로를 바꾸는 과정에서 서문을 새로 만들게 되었는데 새 문 후보지가 이숙번 집 앞 길을 지나가게 되자 이숙번이 압력을 행사하여 새 문의 위치를 상왕 정종의 궁궐인 인덕궁 앞으로 옮겨버린 것인데요. 아무리 정종이 모양만 왕이었던 사람이었어도 이성계의 사실상의 장남이자 상왕이자 현 국왕의 형이었는데, 이숙번 자신의 집 앞을 조용하게 만들기 위해 상왕 집 앞을 시끄럽게 만든다는 것은 신하된 도리가 아닐 것이며 자기 집 앞에 문 놓기 싫다고 상왕 집 문 앞으로 바꿀 정도로 이숙번의 권세가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이숙번은 사헌부와 사간원 양사로부터 성품이 망령되고 태종의 총애를 믿고 오만방자하고, 동료들에게 무례하게 군다는 구실로 여러번 탄핵을 받게 됩니다.
이에 이숙번은 사직상소를 올리고 황해도 연안의 자신의 별장에 가서 살 것을 윤허받지만, 그 벌이 가볍다는 거센 발발로 인하여 공신녹권과 직첩을 모두 회수당하고 귀양을 가게 됩니다.
태종이 이숙번을 귀양 보낸 데는 왕권 강화도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륜은 부패했지만 나이도 많았고 왕권과 왕실에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아 무탈하게 영화를 누리다 갔지만, 이숙번은 아직 젊었고, 경험이 부족한 새 임금을 쥐고 휘두를 수 있는 권신이 될 여지가 충분했던 것입니다.
태종은 죽기 전 세종에게 "이숙번은 내가 죽더라도 절대로 유배를 풀어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신신당부하고 승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세종이 '용비어천가'를 짓게 되었을 때 개국 초의 사실을 자세히 알고 있던 이숙번의 도움이 필요해 서울로 불려 와 편찬을 돕게 합니다.
경연청으로 출근해서 당시 일을 구술하는 일을 했던 이숙번은 그때까지도 자신의 잘못은 전혀 뉘우치지 않고 유배에서 풀려난 사람인 것처럼 안하무인으로 굴었다고 합니다.
이숙번은 세종이 자신을 다시 등용해줄 것이라 기대하지만, 조사가 끝난 뒤 세종은 이숙번의 함양 유배 조치를 풀어 이숙번을 한양 근처인 경기도에서 자유롭게 살도록만 해주고 아버지인 태종의 유언을 잊지 않고 끝내 그를 정계로 복귀시켜 주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2년 뒤 이숙번은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1440년 68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가 죽고 나서야 대광보국숭록대무 의정부영의정으로 추증이 되고, 충숙이라는 시호가 내려집니다.
조선 최초 문과에 급제하고, 태종을 왕에 만들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그 끝은 좋지 않았던 풍운아 이숙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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